유기 정학을 받은 대학생이 정학 기간에 수업 출석을 인정받지 못해 졸업까지 못할 정도가 됐다면 학교가 내린 정학 처분은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재판장 김한성)는 서울 모 여대에 다니는 A씨가 학교를 상대로 낸 징계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징계는 무효”라고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지난해 4학년으로 재학하던 A씨는 학교가 학생들의 학술활동을 장려하려고 마련한 장학금에 자신의 이름으로 신청하고 다른 학생 B씨 이름을 빌려 중복 신청했다.
A씨는 B씨 이름으로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됐지만, 장학금 수령을 위해선 B씨의 부모 동의서가 필요했다. 이를 알게 된 B씨는 A씨에게 “더는 이름을 빌려줄 수 없다”고 했지만, A씨가 계속 빌려달라고 하자 이 사실을 학교 측에 알렸다.
학교는 A씨가 명의를 빌려 장학금을 부당 신청했다고 보고 징계 절차를 거쳐 A씨에게 작년 9월 11일부터 20일간 유기정학 처분했다. A씨는 정학 기간에 전공 수업 3과목을 들었는데, 학교 측이 이를 출석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3과목 전부 낙제 처리가 됐고 졸업할 수 없게 됐다. A씨는 정학 마지막 날인 30일 하루만 출석이 인정돼도 졸업 조건을 채우는 상황이었다.
A씨는 “학칙상 자신을 징계할 사유가 없고 절차에 하자가 있었으며, 정학 처분으로 졸업이 미뤄지는 불이익을 당했다”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징계 사유와 절차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A씨가 유기정학으로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해 제때 졸업하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학은 애초 의도한 징계 이상의 불이익을 A씨가 받지 않도록 배려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아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기정학 기간을 하루만 줄여도 F 처리된 전공선택 과목의 출석 일수 미달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징계 처분이 A씨에게 미친 효과는 유기정학을 넘어 무기정학과 비슷한 정도여서 사회 통념상 타당성을 잃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