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상 정치부 차장

김상곤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표에게서 그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이다. 문 전 대표가 20명을 영입했으니 지금부터가 김 위원장 몫이다. 20명의 마침표를 찍은 인사가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연루됐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다. 김상곤 위원장은 그의 입당 회견 때 "첫 번째 인재 영입을 어느 분으로 할 것인가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과도 상의해 조 전 비서관을 첫 번째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作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조 전 비서관은 "문 전 대표가 내가 운영하던 식당에 찾아와 여러 차례 설득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참 눈치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면 앞서 자신이 영입했다고 설명한 김상곤 위원장은 뭐가 되겠나. 아마 김종인 비대위원장이나 김상곤 영입위원장은 조 전 비서관 얼굴 한번 본 적 없을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는 일면식도 없고 어떤 목적으로 영입했는지도 잘 모르는 조 전 비서관을 어떻게든 선거에 투입해야 한다.

'조응천 영입'의 전후를 보면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주인이 누구인지 간파할 수 있다. 법률적으로 더민주는 이제 '문재인당'에서 '김종인당'으로 변했다. 공천장의 진위를 가려줄 '옥새' 역시 김 위원장이 갖고 있다. 친노(親盧)라 부르던 핵심 실세들도 일단 무대 뒤 분장실로 들어갔다. 노란색이던 집 지붕도 파란 페인트로 칠했고 문패도 '새정치'에서 '더민주'로 바꿔 달았다.

60년 된 이 집은 손대면 우르르 무너질 만큼 위험해보였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가건물로 대피했다. 원래 이 집을 만들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사람들은 "주객(主客)이 바뀐 지 오래됐다"며 살림살이를 챙겨 나갔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집에 나무도 심고 쌀도 갖다 줬던 '호남 민심'은 관망세로 돌아섰다. 문재인 전 대표로선 열쇠를 내줘서라도 집을 살려야 할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민은 더민주를 여전히 '문재인당'으로 부르지 '김종인당'이라고 하지 않는다. 국민의당을 '천정배당'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종인 위원장이 임차인이라면 집주인은 여전히 문 전 대표라는 것을 사람들은 눈치채고 있다.

전세라도 오래 살면 내 집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화장실이나 주방이 불편하다고 실내장식을 새로 할 수는 없다. 임차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고장 난 형광등을 갈아 끼우고, 주인이 내달라고 할 때까지 깨끗하게 집을 쓰는 정도다. '내 집'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4월 총선까지 문 전 대표가 설계하고 사용해왔던 집을 수리해 부동산 시장에 내놔야 한다. "당(黨)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공언대로라면 집 바닥부터 싹 뜯어고쳐야 하지만 임차인은 그걸 할 수 없다. 집 구조를 바꿀 수도, 대들보를 들어낼 수도 없는 데 새집을 만들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임차인 김종인'에게 집주인이 열쇠를 주며 맡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