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개인 의원이 그렇듯 우리 병원 점심시간은 낮 1시부터 2시까지다. 개인 의원 열이면 아홉 이상은 점심시간이 모두 같다. 밖에 나가 점심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진료실에서 배달 음식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다.

어느 추운 날 밖에 나가기 싫어 짜장면을 배달시켰다. 오후 1시가 되었는데 오라는 짜장면은 안 오고 환자가 들어왔다. 직원이 접수를 받아줬기에 진료를 해야 했다. 문제는 짜장면이 오고 나서도 환자들이 한 명씩 들어왔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이라고 중간에 환자 진료를 끊으면 '누군 봐주고 누군 안 봐주고'라는, 고조선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민원이 생겨나겠기에, 직원들에게 미안했지만 그냥 다 봐 드렸다. 도착한 지 10여 분이 훨씬 지나 개봉한 짜장면은 짜장떡이 되어 있었다. 밀가루 떡 덩어리 위에 다소곳이 자리한 짜장은 면과의 합체를 온몸으로 거부했기에 젓가락으로 짜장면을 비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떡 덩어리에 짜장을 발라 먹어야 했다. 눈물 젖은 짜장면은 아니었지만 떡이 된 짜장면을 먹어가며 진료를 하려니 무슨 오지(奧地) 체험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스의 의성 히포크라테스는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고 말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정의에 따르면 20대 중반의 나는 한마디로 '짜장면과 컵라면 그리고 김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때 막 의사가 된 나는 여유를 갖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사치 따윈 꿈도 꿀 수 없었다. 아침은 당연히 건너뛰고 때를 놓친 점심에는 대개 병원 편의점에서 김밥과 컵라면으로 그야말로 허기를 속였다. 대망의 저녁에 아주 운이 좋으면 병원 앞에서 따뜻한 찌개와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 역시 대부분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도 응급 상황이 자주 있었기에 떡이 된 짜장면은 아주 익숙하다. 조금이라도 덜 불어터진 짜장면을 먹어보려고 '면 따로 짜장 따로'라는 주문도 생각해 냈다.

이런 식으로 몇 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속병 한번 앓지 않은 나는 건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가만히 보면 자영업자들 중에 점심시간을 명문화해 놓은 곳은 병원뿐 아닌가 싶다. 이는 의사만이 제공할 수 있는 진료라는 서비스의 특수성 때문이다. 식당 중에 쉬는 시간이 있는 곳이 더러 있긴 하지만 저녁 영업을 위한 준비의 의미가 더 클 것이다. 점심시간에 동네에 있는 꽤 규모가 큰 문구점에 가봐도 일부 직원이 한쪽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을 뿐 영업은 계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 병원 의사들끼리 모이면 우스개 삼아 "동네 병원 의사는 동네 가게 주인만도 못하다"고들 한다. 동네 가게 주인은 가격표만 붙어 있으면 누군가에게 잠깐 가게를 맡길 수도 있는데 병원은 의사가 자리를 비우면 그야말로 올스톱이 된다.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인 것이다. 은행도 점심시간에는 번갈아 가며 식사를 하고 쉬는 시간을 따로 두지 않는다. 병원들의 점심시간이 모든 회사들보다 한 시간 늦는 것은 아마도 점심시간에 진료를 받아야 하는 주변 직장인들을 배려하는 동시에 겨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학적인 면에서 오전 7시에 아침을 먹었다면 낮 12시에 먹는 점심은 조금 이르다. 저녁을 오후 7시쯤 먹는다면 더욱 허기질 테고, 따라서 과식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침을 거르는 사람들이 많은 오늘날에는 점심이 거의 아점(아침 겸 점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저녁은 여유롭게 천천히 먹는 사람도 점심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는 경우가 많다. 짧은 점심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는 것이겠지만 위장 건강에는 매우 좋지 않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이라도 천천히 여유를 갖고 식사를 해야 위장 건강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