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타고 H와 몇 주간 미국의 서부를 여행했다. 몇 백㎞를 달려도 주유소 하나 나오지 않는 곳이란 사실 때문에 주유소에 들를 때마다 기름을 한 가득씩 넣었다. 사막인 줄 알았는데 벼락같이 목초지와 소떼가 출몰하는 풍경을 보다가 미국이 얼마나 큰 땅인지 실감했다.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가, 눈바람이 쏟아지다가, 설경이 펼쳐진 숲 속과 협곡을 달리기 무섭게 황무지가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풍경 때문에 창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데스밸리의 좁은 협곡 안에서 훈련 중인 미군 폭격기 세 대를 동시에 본 건 여행에서 가장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대의 폭격기가 내 눈앞을 날카롭게 베듯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는 것만 빼면 정말이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었다.
H가 가장 가보고 싶어했던 곳은 모뉴먼트 밸리였다. 그는 미국의 컨트리 음악을 좋아했고 존 웨인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오는 서부극을 좋아했다. 직업 군인이었던 그의 늙은 아버지는 종종 집에서 막내 아들에게 햄버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나는 늘 그의 취향을 촌스럽다고 놀려대긴 했지만, 이제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컨트리 음악을 들으며 어깨를 들썩이며 운전하는 그가 보기에 좋았다.
나로 말하자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스산하지만 신비하고, 황량하지만 포근하고, 쓸쓸함이 위로가 되는 춥고 따뜻한 곳, 언뜻 내 바람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지만 어쨌든 그런 곳에 가보고 싶었다. 계획대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달리다가 마음에 동하면 오랜 시간 머물렀다. 유타의 한 동네에서 '빅 버거'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셋이 먹어도 못 먹을 커다란 햄버거를 먹었고 애리조나의 작은 중국 식당에서 '태어나서 가장 맛없는 볶음밥을 이곳에서 먹는구나' 싶은 볶음밥을 먹었다.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어쩐지 타닥타닥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여행 같았다.
12월의 미국은 4시가 조금만 넘어도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에 도착해 모뉴먼트 밸리의 롯지에서 짐을 풀고, 숙소 주변을 산책하다가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그곳에 이곳을 배경으로 한 존 웨인의 영화 '역마차'와 '수색자'를 상영해주는 극장이 있었던 것이다. 당장 상영 시간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극장을 찾아갔는데 무슨 영문인지 그날은 문이 닫혀 있었다. 아쉬웠다. 이곳까지 왔으니 모뉴먼트 밸리가 나오는 영화를 꼭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찾아보게 된 영화가 '포레스트 검프'였다. 너무 오래전에 본 영화라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포레스트 검프가 엄청나게 잘 달렸다는 것과 이 대사만은 기억했다.
"엄마가 말했어요.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란다. 누가 뭘 잡을지 아무도 몰라."
IQ 75인 아들을 가진 여자에게 '이해하기 쉬운 비유'는 좋은 교육법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포레스트는 '틀린 답'이 아니라 '조금 다른 답'을 가진 아이였고, 그래서 아들의 입학을 거부하는 교장에게 이렇게 힘주어 말할 수 있었다. "배우는 게 느릴 수는 있지만… 정상이 아닌 건 아니에요!"라고.
자신에게 '달리기'에 대한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걸 단짝 친구 '제니' 덕분에 깨닫게 되는 순간 포레스트에게 전혀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 달리기를 '엄청' 잘했기 때문에 그는 미식축구 선수가 될 수 있었고, 미식축구 선수가 된 덕분에 군인이 될 수 있었고, 베트남에 파병되었다. 달리기 실력만큼이나 심성이 고와서 그는 많은 장병을 사지에서 구해낼 수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그는 친구만은 살리지 못한다)와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어서 차린 새우 회사 덕분에 엄청난 부자가 된다. 착한 우연을 이토록 기분 좋게 남발하는 영화가 또 있을까. 그러니까 이 영화는 포레스트가 처음 다리에 찬 보조기를 떼어버리고 '우연히' 바람처럼 달릴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때, 그의 옆에는 평생의 사랑 제니가 있었다.
사랑은 결핍을 먼저 알아본다. 사랑이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가능해지는 세계라면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에게 줄곧 학대당했던 제니에겐 고립된 포레스트의 아픔이 유독 잘 보였을 것이다. 그녀가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던 그의 손을 꼭 붙잡고 평생 친구가 되어준 건 그런 이유다. 물론 포레스트와 달리 그것이 연인의 감정은 아니었다는 게 이들 사이의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포레스트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사랑의 본질을 알고 있는 (IQ와 상관없이) 현명한 남자였다. 사랑은 본디 둘이 하는 것이라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을 바라는 일이란 걸 말이다.
20여년 만에 본 '포레스트 검프'는 내게 미국 역사에 대한 우화라기보다 정확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처럼 읽혔다. 소제목을 붙인다면 '사랑과 달리기에 대한 소묘'쯤이 될까. 드디어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믿었던 순간 사라진 제니 때문에 고통을 참을 수 없었던 어느 날 포레스트가 달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동네나 한 바퀴 돌까 했는데, 점점 미국 전역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포레스트에게 사람들이 '왜 달리느냐'고 묻는다. 그는 과거는 옮길 수만 있다면 뒤에 두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뛰기만 한다. 그의 달리기를 종교적, 정치적,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며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그와 뜻을 함께 하며(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달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포레스트가 문득 달리기를 멈춘 곳이 바로 '모뉴먼트 밸리'였다. 달리기 시작한 지 '3년 하고도 2개월 14일 16시간'이 지난 후였다. 영화 '동사서독'에서 실연당한 금성무가 쉬지 않고 달리기를 하는 장면 이후 그보다 뭉클한 장면은 처음이었다. 말로 떠드는 게 사랑일 리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랑은 오직 자신의 시간과 행위로 증명하거나 입증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멈추자 추종자들이 침묵 속에서 일제히 그를 바라본다. 포레스트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너무 피곤해요. 이제 집에 가야겠어요."
긴 여행의 고단함이 문득 어깨를 짓눌렀다.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날 밤 알란 실베스트리의 'I'm forrest'를 들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창문을 열고 롯지의 베란다로 나왔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였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춥지만 따뜻하고, 황량하지만 위로가 되는 곳, 이번 여행에서 내가 그토록 원했던 기적의 공간. 눈앞에 거대한 계곡이, 모뉴먼트 밸리가 보였다. 별이 한없이 쏟아지는 밤 어둡지만 나는 분명히 그곳을 느낄 수 있었다.
●포레스트 검프―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