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에 30년간 묵혀둔 '바바리'를 꺼내 입을 때가 됐다. 우위썬(吳宇森·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1986)이 개봉 30주년을 맞아 다음 달 18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판(版)으로 재개봉된다. 이 영화는 80년대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서 홍콩 누아르 영화 열풍을 일으켰다. 80년대 남성 로망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다.

암흑가를 주름잡는 보스인 형과 경찰인 동생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남자들의 끈끈한 우정과 배신을 그렸다. 1986년에 제작됐지만, 한국에선 이듬해 5월 23일 서울 화양·명화·대지극장에서 개봉했다. 당시 서울 관객은 9만5000명으로 흥행 실패는 면했다. 재개봉관으로 내려간 뒤 소문이 퍼졌고, 비디오로 나오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뒤늦게 개봉관에서 재상영을 한, '역주행' 히트작이다.

이 영화가 등장한 이후 우위썬은 누아르와 액션 감독으로 인정받아 할리우드 진출까지 했으며 제작자인 쉬커(徐克 ·서극)도 승승장구했다. 영웅본색은 3편까지 제작이 됐고, 90년대 초반까지 극장에서는 할리우드영화보다 홍콩영화가 더 각광받았다.

한국 팬의 열광적 반응에 힘입어 2편이 개봉할 당시 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 디룽(狄龍·적룡)과 오 감독이 화양, 대지극장까지 방문했다. 극장 무대에 선 저우룬파에게 팬들이 몰려들어 그의 옷이 뜯길 정도였다. 결국 극장 문 유리가 깨지면서 이들은 일정을 중단해야 했다.

80년대 중후반에 10대 후반~20대를 보낸 '응팔세대' 남자라면 이 영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선글라스와 바바리를 구할 수 없었던 이들은 저우룬파를 따라 입에 성냥개비나 이쑤시개를 물고 씹었다. 이 영화에 삽입된 장궈룽(張國榮·장국영)의 '당년정'은 당시 팝송이 아닌 외국곡으로는 드물게 노래방 명단에 올랐다. '형님'과 '의리'에 집착하는 허세는 이때 완성됐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