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텃밭인 호남의 민심(民心)이 요동치고 있다. 광주에서 만난 시민들은 "문재인·안철수 둘 다 못 믿겠다"고 했다. 심지어 "새누리당 이정현(전남 순천·곡성) 의원 같은 사람 어디 없느냐"는 말도 나왔다. "정치인 이름도 꺼내지 말라" "어느 당도 싫다"는 시민도 많았다.

지난달 13일 안철수 의원이 탈당할 때만 해도 국민의당으로 기운 듯했던 호남 여론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의 사퇴 발표와 김종인 선대위원장 영입 이후에는 다시 더불어민주당에 호의적으로 변했다. 야권 관계자들은 "지금 호남은 문재인이냐, 안철수냐 하는 선택이 아니라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대안 세력을 찾고 있는 것"이라며 "총선 때까지는 어느 쪽을 택할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국민의黨 광주시당 창당대회 - 21일 광주광역시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당 광주시당 창당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계파패권’을 무너트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은희 의원, 한상진 창당 준비위원장, 안철수 의원, 조정관 광주시당 준비단장, 장병완·임내현 의원.

광주 의원 8명 중 2명만 더민주에 남았다. 그러나 21일 현재 광주 시민들의 속마음은 더 복잡했다. 신군부의 국보위에 참여했던 김종인 전 의원이 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것을 두고는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표의 비(非)운동권 영입 인사들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에 대해선 "새롭고 참신하다"고 했지만 호남 현역 의원들이 대거 합류하는 것에 대해선 "결국 그 나물에 그 밥 아니냐"며 의문을 표시했다. 또 국민의당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의 '이승만 대통령 국부론(國父論)'에 대해서도 "이전 야당에선 듣지 못했던 말"이라며 비판적이었다.

광주 시민 권철수(52)씨는 "이승만더러 '국부'라고 하는 국민의당이나 국보위 참여한 김종인 데려온 더민주나 둘 다 밉다"며 "말 한마디에 바뀌는 게 광주 민심이다. 아주 그냥 짜증이 확 난다"고 했다. 광주 유권자들은 "문 대표를 둘러싼 친노(親盧)와 운동권 인맥에는 기대할 것 없다"고 했지만, 안 의원에 대해서도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믿음이 안 간다"고 했다. "요즘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이 바뀐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더민주의 한 의원은 "호남 출신으로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는 정치인이 한 명도 없다는 것에 대한 분노도 (호남 유권자들 마음속엔) 녹아 있다"며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모두 영남 사람 아니냐"고 했다. 오승철(33)씨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강력한 지도자라면 출신이 어디든 확 밀어줄 것 같은데, 문재인 안철수 말고 다른 사람 없냐"고 했다.

전남은 광주와는 조금 달랐다. 더민주에 대한 반감이 광주보다는 좀 더 강한 듯했다. 전남의 더민주 의원은 "광주와 달리 전남 민심은 그렇게 확확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21일 오전 보성에서 만난 조모(42)씨는 "우리가 대선 때도 문재인을 밀어줄 만큼 밀어줬는데 당대표 되고 고집을 너무 부려서 이 모양이 된 것 아니냐"며 "그나마 안철수가 나은 것 같다"고 했다. 정모(65)씨도 "안철수가 좀 더 깨끗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니까 한번 믿어보려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총선을 치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선 정당보다는 인물이 총선 당락의 핵심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홍득표 인하대 명예교수는 "더민주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과 권은희 의원을 전략 공천했던 김한길·안철수 의원에 대한 앙금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는 "호남은 앞으로 총선 때까지 일회적 발언이나 우발적 사건에 굉장히 민감한 모습을 보일 것 같다"고 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호남 민심과 관련해 일치하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이대로 호남 민심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갈라진 채 총선을 치를 경우, 호남에서야 두 당 중 하나가 되겠지만 수도권에서 (표가 갈라지면서) 전멸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