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달 2일 이후 34일 연속 우리나라 주식을 팔아 치우고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당시 33거래일 연속 매도 기록을 깬 사상 최장 기간 '셀 코리아(Sell Korea)'이다. 이탈한 자금만 6조원을 넘겼다. 글로벌 위기 당시 이탈 규모인 8조9000억원에는 못 미치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저유가, 중국 경기 둔화, 미국 금리 인상이라는 세 가지 악재가 겹친 글로벌 금융시장은 당분간 나아지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를 비롯한 신흥국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현상도 이제 시작이라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우리는 과거에도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달러가 빠져나가 위기를 맞곤 했다. 1997년에는 만기가 10년이 넘는 장기 대출, 신용도가 낮은 개발도상국 채권까지 외환보유액이라고 했다가 정작 필요할 때 현금으로 바꾸지 못해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다. 2008년에도 보유 외환 대부분을 주식·채권에 투자했다가 '한국 외환보유액에는 현금이 부족하다'는 의심을 받았다. 이 때문에 2008년 3월 2600억달러가 넘던 외환보유액은 8개월 사이 600억달러 넘게 줄었다. 결국 그해 10월 미국과 통화 스와프(SWAP)를 통해 200억달러 가까운 구제금융을 갖다 쓰고 나서야 겨우 위기에서 벗어났다.

작년 말 현재 우리 외환보유액은 3679억달러이다. 정부는 이 외환보유액이 국제통화기금(IMF)이 권장하는 수준이라며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새해 들어 달러당 원화 환율은 1200원을 넘겨 5년 반 사이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환율이 더 불안해지면 언제든 달러 이탈이 급격하게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일본과 통화 교환 협정도 맺고 있지 않아 손을 내밀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우리 외환보유액 가운데 당장 꺼내 쓸 현금성 예치금은 3.6%에 불과하고 93.8%는 채권·주식 등에 투자돼 있는 점이다. 비상 국면에서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의 비중이 1년 전에 비해 늘어나기는커녕 줄었다. 한국에 위기가 닥치면 다시 달러 부족 사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이미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외환보유액 중 현금 비중부터 선제적으로 늘리고, 급속한 달러 이탈을 막을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미국, 일본과 통화 교환 협정을 다시 맺는 것도 중장기 과제로 협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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