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논설위원

세대(世代) 관점에서 볼 때 온라인 중고차 경매 회사 '헤이딜러'의 영업 중단은 기득권이 청년층을 '약탈'한 사건과도 같다. 헤이딜러는 서울대 재학생 2명이 창업해 승승장구하던 청년 기업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국회가 법을 고쳐 온라인 회사도 주차장과 건물 등을 갖추도록 강제했다. 온라인만으로는 중고차 경매를 하지 말라는 얘기니 폐업 강요나 다름없었다. 알고 보니 법안을 대표 발의한 여당 의원은 중고차 업체가 밀집한 서울 강서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었다. 그래서 더 여론 지탄을 받았다.

의외였던 것은 헤이딜러 측 반응이었다. 헤이딜러는 곧바로 사이트를 폐쇄하고 영업을 자진 중단했다. 법이 발효(發效)도 되기 전이었다. 잘나가던 유망 기업이 황당 법률 때문에 졸지에 불법으로 전락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부당함을 고발하고 국회로 달려가 항의 농성이라도 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헤이딜러는 군말 없이 사업을 접었다. 이렇다 할 저항도, 항의도 없었다. 여론이 들끓고 구경꾼들이 흥분하는데 정작 피해 당사자는 침묵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공동 창업자인 27세 박진우 대표는 "(새 법에 따라) 벌금을 낼 수는 없었다"며 말을 아꼈다. 무엇이 한참 혈기 왕성할 청년 기업가를 이토록 조심스럽게 만들었을까. 싸워보았자 소용없다는 체념의 처세술일까.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이를 '분노하지 않는 청년' 현상으로 해석한다. 경영학자인 그는 신작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펴내며 세대 담론에 뛰어들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이 땅의 청년들이 어느 틈엔가 '긍정의 노예'가 됐다는 것이다. 청년 세대는 불리하게 설계된 사회 구조의 일방적 피해자다. 그런데도 저항 대신 주어진 체제에 순종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사회 통합 실태 조사(2014년)에 나타난 청년 행복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조사에서 20·30대 중 행복하다고 답한 비율은 70%에 육박했다. 50·60대를 포함한 다른 모든 세대를 압도하는 수치였다. 이 땅의 청년들은 자신이 '헬조선'에서 '흙수저'로 태어났다며 한탄한다. 그러면서도 행복하다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역설적 행복의 정체에 대해 장하성은 "희망 포기의 대가"라고 설명한다. 미래를 포기했기 때문에 지금 행복할 수밖에 없는 '아픈'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저항해야 세상이 바뀐다. 작년 말 한국 사회를 달궜던 20대 희망퇴직 소동이 그랬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입사 1~2년 차 신입 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해 논란을 부른 사건이다. 이 이슈는 두산의 29세 직원이 모바일 익명 앱에 내부 고발 글을 올리면서 표면화됐다. 여기에 다른 직원들이 가세했고 한 직원은 자기 실명(實名)을 공개하며 실태를 폭로했다. 결국 두산은 두 손 들고 계획을 철회하고 말았다.

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의 인턴 착취 사건도 있었다. 위메프가 20대 11명을 인턴으로 채용해 하루 14시간을 부려 먹다 해고했다. 이 일은 인턴 해고자의 고발 때문에 외부로 알려졌다. 여론이 들끓고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위메프는 11명 전원을 채용하겠다며 백기 투항했다. 인턴들이 침묵했다면 묻혔을지도 모를 사건이었다.

청년들이 조직화하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악명 높던 피자 업계의 '30분 배달제'가 퇴출된 것은 2030세대 노조인 청년유니온의 캠페인 덕이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가입한 알바연대는 비정규직 문제를 이슈화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기득권 중심의 노동판을 깨겠다며 민주노총에 싸움 건 청년 단체도 있다.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은 국회 환노위 위원들을 상대로 낙선(落選) 운동을 선언했다. 국회가 노동 개혁 법안을 발목 잡는 바람에 청년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이유다. 방법이 좀 거칠어도 괜찮다. 싸우고 행동해야 기성세대가 정신 차린다.

세상을 바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선거다. 오는 4월 총선이 좋은 기회다. 청년 단체들이 연대해서 세대 차원의 요구 사항을 내건다면 파장이 클 것이다. 일자리 창출 방안을 내놓으라 해도 좋고, 왜 빚을 늘려 후대에 부담 주느냐 따져도 좋다. 청년 세대 이익에 반하는 후보에겐 표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해보라. 모든 정당이 잔뜩 겁먹고 청년 공약을 반영하겠다고 난리 피울 것이다.

4년 전 19대 총선 때 20·30대 투표율은 45%에 불과했다. 당시 청년당(黨)도 창당해 관심을 끌었지만 득표율 0.3%의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청년들이 이렇게 정치에 무관심해선 정치권도, 정부도 우습게 본다. 기성세대 중심의 정책도 바뀌지 않는다.

청년당이 4년 전엔 실패했지만 이번 총선에 한 번 더 도전하기를 바란다. 흙수저들이 뭉쳐도 좋고, 어느 TV 광고처럼 아르바이트 노동자 정당을 못 만들 이유도 없다. 청년당과 흙수저당, 알바당이 나와 목소리를 내야 세상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