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시험을 통해 과장 승진자를 뽑는 ‘승진 고시(考試)’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승진고시’란 농협의 3~5년차 계장(5급)급 직원들이 과장(4급)으로 승진할 때 보는 시험을 말한다. 농협에선 1996년부터 승진 고시에 합격하면 다른 직원들보다 빨리 승진할 수 있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 정부의 성과주의 확산 방침에 따라 상반기 중 노·사 협의를 거쳐 승진 고시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경섭 신임 농협은행장도 최근 취임 직후 핵심과제로 승진 고시 폐지를 꼽았다.
농협의 승진 시험은 기본적인 금융 실무는 물론 경영학, 법학 과목도 따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시험 난이도가 높아 ‘고시’라는 별명이 붙었다.
시험은 ‘임용 고시’와 ‘자격 고시’로 분류되며, 시험 난이도가 더 어려운 ‘임용 고시’에 합격하면 1년 이내에 과장급으로 승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자격 고시’에 합격하면 상당수가 1~3년 내에 승진의 기회를 얻는다. 금융권을 통틀어 농협에만 남아 있는 인사 제도로, 증권을 제외한 은행·보험 등 농협금융의 모든 계열사에 적용된다. 농협중앙회 직원들도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다
시험이 워낙 어렵다 보니 시험에 계속 떨어져 ‘만년 대리’로 남게 되는 직원도 적지 않았다. 일부 직원은 시험 합격을 위해 아예 고시원에 자리를 잡기도 한다.
농협 내부에서는 승진 고시 폐지안이 꾸준히 거론돼 왔지만, 노동조합과 일부 경영진의 반대로 폐지안은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나 정부가 금융권의 성과주의 확산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데다, 농협중앙회장, 농협은행장 등 주요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잇따라 교체되는 것을 계기로 고시 폐지안이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승진 고시 폐지론자들은 직원들이 실적으로 평가 받아야 하며 시험 성적으로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일부 직원들이 영업점에서 업무를 뒷전으로 미뤄 동료 직원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점이 고시 폐지의 주요 근거로 꼽힌다.
그러나 일부 직원들은 승진 고시를 발판 삼아 유능한 젊은 직원들이 빨리 승진할 기회를 얻게 되고, 지점장 등 상급자들의 인사 전횡을 차단할 수 있어 섣불리 고시 제도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거친 개혁’을 강조하는 등 정부가 성과주의 확산을 올해의 핵심 과제로 선정하면서 승진 고시도 설 자리가 좁아졌다”면서 “금융사뿐 아니라 농협 전체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안이라 전면적으로 제도를 개편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