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중동 국가라고 하면 사시사철 따뜻할 거라는 오해가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한겨울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이 오기도 합니다. 시리아 난민들은 지금, 이 추운 겨울을 기본적인 방한복조차 없이 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요르단의 자타리(Zaatari)·아즈락(Azraq) 난민 캠프를 방문하고 온 강도욱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의 말이다. 2011년 3월 발발한 시리아 내전으로 439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6년째 계속되는 전쟁으로 약 23만명 이상의 시리아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6%(1만2000명)는 삶을 채 꽃피워보지도 못한 아이들이다. 고향을 잃고 맞게 된 또 한 번의 새해, 시리아 난민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강도욱 팀장에게 난민들의 고된 겨울나기를 들었다.

-캠프의 난민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나.

"한 달 생활비 20JD(약 3만원)와 매일 똑같은 빵 네 덩이 정도를 지원받아 살고 있다. 오죽하면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도 있다. 가장 심각한 인프라 문제 중 하나는 위생이다. 자타리 캠프는 배수시설이 없어 비가 내리거나 눈이 녹으면 그 물이 길바닥에 고여 썩는다. 딛고 선 바닥이 해충과 수인성 질병의 원인인 셈이다. 식수도 수십, 수백 가구가 하나의 고무 탱크를 공유하는 형식으로 조달하고 있었다. 월드비전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년간 꾸준히 식수 위생 사업을 진행해왔다. 아즈락 난민 캠프 내에 정화조 674개, 오수 저장 구덩이 767개를 확보하고 11.7㎞ 길이의 식수 파이프도 설치했다. 자타리 캠프에도 오수(汚水)를 처리할 수 있는 배수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대부분의 시리아 난민 어린이가 신발도 없이 겨울을 나야 한다. 최근 터키 언론은 생후 4개월된 시리아 난민 아기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난민촌을 방문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거주민 말로는 매일 50명이 출생한다고 하더라. 실제로 난민촌에서 막 태어난 아기를 보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난민촌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은 딱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난민 캠프 출입을 감시하는 군인, 다른 하나는 월드비전과 같은 국제구호단체 직원이다. 시리아 난민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이 이 두 가지뿐인 거다. 남수단의 '잃어버린 세대'가 생각이 났다. 남수단은 30여년의 독립전쟁을 치르는 동안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다. 그 결과 2011년 독립을 이룬 이후에도 나라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가 텅 비어 버린 상황이다. 난민 캠프 아이들을 이대로 방치하면 그 아이들이 시리아의 '잃어버린 세대'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난민 캠프 내 어린이 교육 환경은 어떤가.

"아즈락 캠프 안에는 한 번에 50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큰 교육 시설이 있다. 문제는 교육의 질이다. 일반적인 요르단 가정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 수준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다. 그나마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자타리 난민촌 내에만 약 2만8000명의 아동이 있는데, 이 중 학교에 등록된 아동은 약 1만5500명에 불과하다. 학교에 이름만 등록해두고 구두닦이나 고물 수집 등 노동에 투입되는 아이들도 있다. 여자 아이들의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조혼 풍습을 빌미로 인신매매나 성매매가 공공연히 이뤄지기도 하고, 대부분이 무슬림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 여성에 대한 폭력과 학대가 신고조차 되지 않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 구호와 관련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2013년부터 시작한 교육 프로그램 '아동에서 아동으로(Child to Child·C2C)'를 확대 진행할 예정이다. 이미 C2C를 통해 요르단 전역 28개 초등학교에서 8000명의 시리아 어린이와 요르단 어린이가 서로의 언어·사회 문화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있다. C2C외에도 공교육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속적으로 난민 어린이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단순 생계 지원을 넘어서, 난민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시리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제사회의 지원도 줄고 있는데.

"'세계의 가장 어렵고 열악한 곳'으로 손꼽히는 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시리아 난민 캠프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 구호 현장은 없었다. 절박한 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고, 후원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내전이 끝나도 시리아의 미래를 장담하기란 어렵다. 월드비전이 아즈락 캠프 안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동보호심리센터(Child Friendly Space)'에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봤는데 충격 그 자체였다. 폭발로 잿더미가 된 마을, 참수당하는 사람, 총을 맞아 쓰러진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잊히지 않는다. 이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말아 달라. 아이들은 시리아가 평화를 되찾았을 때, 홀로 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