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서울 명문대를 졸업한 정모(27)씨는 일본 치과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고 일본어도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도쿄 현지 기숙 학원에서 6개월간 일본어와 화학·물리·수학 등 이과(理科) 계열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우면 치대 입학이 가능하다는 유학원의 말에 입시 준비를 결심했다. 정씨는 "국내 취업 전망이 불투명해서 치과 의사 쪽으로 방향을 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치과 의사가 되기 위해 일본 치대(齒大)에 유학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본에서 치과 의사 면허를 따고 돌아와 한국에서 개업을 하려는 것이다. 일본 치과 의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정부가 정한 일정 절차를 거쳐 한국 치과 의사 면허를 딸 수 있다.

새해 들어 일본 유학 전문 유학원들은 오는 9월 치러지는 일본 치대 입시를 겨냥한 각종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일본 치대들이 외국인 특별 전형에서 요구하는 일본유학시험(EJU)과 논술시험에 대비해 일본어와 수학·과학 등 이과 교과목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이다. 6개월 과정에 비용은 500만~1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고교생은 물론 대학 졸업자까지 몰려 고교생반과 대학생반을 별도로 운영하는 유학원도 있다.

한국에서 치과 의사가 되려면 국내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 의사 국가시험을 치러야 한다. 외국 치대 졸업자는 따로 치의학 기초 지식을 평가하는 '치과 의사 예비 시험'을 통과해야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준다. 다만 이 예비 시험에는 한국 정부가 인정하는 미국·독일·일본 등 14개국 104개 대학을 졸업하고 현지에서 치과의사 면허를 딴 사람만 응시할 수 있다. 일본은 15개 치대가 여기에 포함돼 있다.

한국 유학생들은 이 15개 일본 치대에 지원을 한다. 한 유학원 관계자는 "일본 15개 치대에 매년 한국 학생이 한 학교당 4~5명씩 총 70명 안팎 합격한다"며 "한 사립 치대는 전체 학생 600여명 중 80여명이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치대가 한국 학생에게 인기를 끄는 건 한국 치대에 비해 경쟁률이 크게 떨어져 입학이 쉬운 것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010년 입시에서 일본 내 17개 사립 치대 중 11곳이 정원 미달 사태를 겪었다. 당시 이 치대들의 결원율은 15~66%나 됐다. 재작년에도 치대 4곳이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일본에서 치대 인기가 시들해진 건 치과 의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의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동안 고수익을 내온 임플란트 시술 비용은 2010년 이후 한 때 일부치과에서 개당 1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한국치의학교육평가원 관계자는 "일본은 치과 의사 수가 너무 많은 데다 도시에 몰려 있어 '편의점보다 치과 의원이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적자를 보다 문을 닫은 치과도 적잖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치대도 한국 학생 유치에 적극적이다. 일본의 한 치대는 입학사정관이 직접 2개월에 한 번꼴로 한국의 유학원을 찾아 한국 학생들을 상담한다. 지난해 7월 초 서울과 부산에서 한국 학생들을 상대로 입학설명회를 연 일본 치대도 있다. 이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 102명 중 한국 학생이 절반(55명)을 넘는다고 한다.

일본 치대가 일부 부유층 자제들이 치과 의사 면허증을 따기 위한 우회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6년 과정에 들어가는 일본 치대 학비는 3억원 안팎에 이른다. 여기에 현지 생활비 등을 포함하면 어지간한 부유층 아니고선 유학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