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의 한 IT 회사에 다니는 김모(31)씨는 야근이 없는 날이면 오후 9시쯤 퇴근해 곧장 서울 중구 신당동 원룸 집으로 향한다. 김씨는 집에서 컴퓨터로 내려받아 놓은 미국 드라마 1편을 보고, 밤 11시쯤 자리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1시간 정도 확인하다 잠에 든다. 주말에도 근처 편의점에 맥주와 과자를 사러 외출하는 것 외엔 거의 밖에 나가지 않는다. 김씨는 "페친(페이스북 친구)은 100명이 넘지만, 실제 친구를 만난 적은 거의 없다"며 "올해 크리스마스도 집에서 영화를 보며 혼자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 시간을 홀로 보내는 '나홀로족(族)'이 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0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5'에 따르면, 한국인(15세 이상) 중 56.8%는 여가 시간을 주로 혼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비율은 지난 2007년 조사 때(44.1%)보다 12%포인트 이상 늘어났다. 반면 친구와 여가를 보내는 비율은 2007년 34.5%에서 8.3%로, 7년 사이에 26.2%포인트나 줄었다. 특히 15~19세는 73.3%, 20대는 71.1%가 여가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크리스마스에다 각종 송년 모임이 많은 연말에도 혼자 노는 사람이 많다. 서울에서 중소기업에 다니는 정모(28)씨는 최근 온라인 중고마켓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세로로 쪼갠 일명 '반반트리'를 1만원에 샀다. 정씨는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 계획이라 싸고 크기도 작은 반반트리로 원룸 방을 꾸몄다"고 했다.

편의점 CU는 연말 '나홀로 파티족'을 겨냥한 '미니 케이크' 6종을 출시했다. CU 관계자는 "연말에 '나홀로 파티족'이 느는 추세라, 올 12월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20% 정도 늘었다"고 했다.

여가시간 누구와 보내나. 나홀로 여가 연령별 비율.

혼자 노는 한국인이 많아진 건 경기 불황으로 경제적 여유가 줄어든 것과 관련이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5월 남녀 직장인 8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5.4%가 가장 아까운 지출 항목으로 '술자리 등 유흥비'를 꼽았다. 직장생활에 치이면서 남과 함께 어울릴 시간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인의 평일 여가 시간은 2시간 14분으로 한국인 평균 여가 시간(4시간 49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20·30대 젊은 층의 개인주의적 성향도 작용하고 있다. 김영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외동이 많은 지금의 20·30대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다"고 말했다.

나홀로족들은 혼자 노는 시간을 주로 텔레비전과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이 휴일에 가장 많이 한 여가 활동은 TV 시청(51.9%)과 영화 관람(48.6%)이었다(문화체육관광부 조사). 블록 조립이나 프라모델 만들기 등을 하며 혼자 노는 젊은이도 많다.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오모(28)씨는 여가 시간 대부분을 8㎜ 정도 크기의 초소형 '나노블록'을 조립하는 걸로 보낸다. 오씨는 "사람에 치이지 않고 고민을 잊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혼자 노는 시간이 늘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빅데이터 전문업체인 다음소프트가 발표한 SNS 분석 자료에 따르면 블로그나 트위터 등에 등장하는 '외롭다'는 단어는 4년 전인 2011년보다 5배 이상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