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산타할아버지가 주신다는 그 선물, 사실 엄마가 주는 거 아냐?"

9세, 7세 남매를 둔 강양순(35·주부)씨는 최근 큰딸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아니야. 산타 할아버지가 주시는 거야"라고 잡아뗐지만 아이는 집요했다. "친구들이 그러는데 산타는 없고 엄마가 산타인 척하는 거라는데?" 하는 딸의 말에 강씨는 그만 "그래, 사실 엄마가 산타야"라며 '항복'했다. 강씨는 "아이가 커 버리는 게 아쉬워 동심(童心)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도록 해 주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열 살 넘으면 '엄마가 산타야' 말하세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게 해 주고 싶은 부모와 산타클로스의 실체를 파헤치고 싶은 아이. 양자 간에 벌어지는 '두뇌 싸움'은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성탄절 즈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중학교 1학년 딸을 둔 한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혹시나 들킬까 하며 산타 노릇을 했다. 아이가 내 필체를 알아챌까봐 선물에 동봉한 카드 글씨를 왼손으로 쓰기도 했다"고 했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동심을 지켜줄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알게 될 진실을 미리 알려줄 것인가. 6세, 2세 두 아들의 엄마 최보라(37·회사원)씨는 "어느 쪽이 더 교육적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미국 심리학자 노먼 프렌티스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인과관계를 분명히 파악하게 될 정도로 인지능력이 발달하면 더 이상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된다. 아동심리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입학 무렵이면 산타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는데 3학년쯤 되면 절반 이상이 믿지 않게 되고, 5학년 무렵이면 대부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의 오은영 원장은 "만 10세 이후 아이들에겐 산타가 허구의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그 또래 이상의 어린이들에겐 꿈과 환상보다는 현실을 기반으로 주변 상황 및 정보를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 오은영 원장은 "이 시기 아동이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면 '엄마 아빠가 네가 꿈과 희망을 갖길 바라서 산타 노릇을 했어. 앞으로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건 변함없을 거야'라고 하면서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동심이란 것이 부모가 지켜준다고 해서 지켜지지는 않는다"라며 "아이 눈높이에 맞춰주되 아이가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면 '산타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선물을 주는 게 맞아. 네 인생에 또 산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말해 주라"고 했다.

유아기에 산타는 희망의 지침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의 유아기는 꿈과 환상이 중요한 시기. 유아기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란 '내가 착한 일을 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오실 것'이라는 긍정적인 희망의 지침으로 작용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크리스마스 때 산타로부터 선물을 받곤 했던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이 평생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산타를 믿고 싶어하는 유아기 아동들의 동심은 지켜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TV·인터넷 등 각종 매체의 영향으로 요즘 아이들의 '산타를 믿는 시기'는 예전에 비해 짧아지는 추세다. 5세 아들을 둔 김혜리(36·회사원)씨는 "TV에서 핀란드의 산타 마을 다큐멘터리를 본 아들이 산타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있고, 핀란드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면서 "우리 어릴 때처럼 한 명의 산타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숙한 아이들이 선물 때문에 산타를 믿는 척하는 경우도 있다. 임수영(41·주부)씨는 얼마 전 중학교 2학년 아들로부터 '고백'을 받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미 산타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엄마한테 선물을 계속 받으려고 5학년 때까지 산타를 믿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 곽금주 교수는 "아이가 산타를 계속 믿고 싶어한다면 과하지 않은 선물을 주면서 이벤트처럼 '산타클로스 놀이'를 즐기게 해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산타클로스는 생전에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던 가톨릭 성인(聖人) '성 니콜라스'에서 유래했다. 그의 전설이 세월을 거듭하며 변형되다가 크리스마스 때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주는 인물로 자리 잡게 됐다. 우리에게 친숙한 빨간 옷 입고 흰 수염 기른 산타클로스 이미지는 1931년 미국 화가 헤든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용으로 그린 그림에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