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뛰어난 기사라도 실수나 착각이 따르게 마련. 그렇다면 톱클래스 기사 여럿이 서로 상의해 착점을 결정하면 완벽에 가까운 바둑이 되지 않을까. 가끔 이벤트 방식으로 열리던 상담기(相談棋)가 거액의 상금이 걸린 국제 행사로 치러진다. 15일 광저우(廣州)에서 시작될 제2회 금용성배 세계바둑단체선수권대회로, 우승 상금만 무려 200만위안(약 3억6000만원)이 걸려 있다.

각 3명으로 구성된 출전 팀들은 순위 결정전까지는 1대1 로 겨룬 뒤 1위 팀과 4위 팀, 2위 팀과 3위 팀이 맞설 준결승부터 상담기로 대결한다. 두 팀은 별도 배정된 방에서 자체 논의를 거쳐 본부에 착점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팀당 4시간 30분을 다 쓰면 초읽기 없이 끝나는 타임아웃제다.

2년 전 주강배 결승 상담기 때의 한국 팀 모습. 최철한, 강동윤(왼쪽 두 사람), 박정환(오른쪽)이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팀플레이를 펼쳐 중국을 꺾고 우승했었다.

한·중·일 3강은 시드 팀과 와일드카드 팀(30세 이상 세계 대회 우승자로 구성) 등 2팀씩 출전한다. 한국은 박정환(22·국내 1위), 김지석(26·5위), 이동훈(17·12위)으로 구성된 시드 팀과 이세돌(32·2위), 박영훈(30·3위), 최철한(30·5위)이 뭉친 와일드카드 팀으로 등록했다.

중국은 커제(柯潔·18), 스웨(時越·24), 저우루이양(周睿羊·24) 등 자국 랭킹 1~3위를 시드 팀으로 묶어 총력전으로 나온다. 63세의 녜웨이핑(�衛平)과 구리(古力·32), 창하오(常昊·39)가 와일드카드 팀을 꾸렸다. 일본은 요다(依田紀基·49), 쑤야오궈(蘇耀國·36), 위정치(余正麒·20)의 시드 팀과 고바야시(小林光一·63), 조치훈(59), 왕리청(王立誠·57)의 와일드카드 팀으로 무장했다.

상담기의 생명은 '팀워크'다. 이는 2년 전 치러진 이 대회의 전신 주강배 때도 여실히 입증됐었다. 3명이 가슴을 터놓고 서로의 지혜를 더하면 3명 이상의 시너지를 볼 수 있지만 그 반대일 경우 혼자 두는 것만도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상담바둑이다.

당시 결승서 한국은 박정환·최철한·강동윤이 농담까지 주고받는 등 화기로운 분위기 속에서 최선의 수를 찾아 중국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반대로 중국은 천야오예·스웨·저우루이양 등 현역 세계 챔프들을 모아 놓고도 대화 부족, 분위기 경색으로 지리멸렬한 끝에 대패했다. 개성, 기풍 차이와 자존심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시드 팀으로 출전하는 김지석은 출전을 앞두고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한 번 경험을 해 본 정환이가 리드하고 막내 동훈이가 자유롭게 의견을 내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했다. 그는 "출국에 앞서 한데 모여 연습을 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상담기는 개인 전적 집계에 들어가지 않지만 각국 최정상 고수들 간에 실력의 총화(總和)를 견준다는 점에서 국가적 명예가 걸려 있는 승부다. 한국으로선 올해 중국 세에 밀린 빚을 갚아주는 의미도 있다. 한편 대회 기간 중엔 맹기(盲棋·눈을 가리고 두는 바둑) 다면기 세계기록 도전 행사도 함께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