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9일 오후 서울 조계사 경내(境內)에 들어가 이곳에서 24일째 은신 중인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에 대한 체포·구속영장 집행에 나섰다가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이 "내일(10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 거취 문제를 해결할 테니 경찰과 민노총은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조계종을 지켜봐 달라"고 제안하자 일단 물러섰다.

자승 총무원장은 이날 오후 5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조계종은 그간 상생과 원칙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며 "한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것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승 총무원장은 그러면서 "더 이상의 갈등은 (조계종) 종단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경찰이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에 나선 지 2시간쯤 지난 9일 오후 5시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은“내일(10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 거취 문제를 해결할 테니 경찰과 민노총은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조계종을 지켜봐 달라”고 했다.

[민노총 긴급 대책회의… '韓 순교자 만들기' 차질 ]

이에 경찰은 긴급 수뇌부 회의를 갖고 "일단 체포영장 집행을 연기하겠다"며 한 위원장 체포에 투입된 경찰 병력을 조계사 밖으로 물렸다.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이제 사실상 조계종이 떠맡게 됐다. 조계종 측은 한 위원장을 설득해 경찰에 자진 출두시킨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반발할 경우 경찰이 10일 다시 강제집행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 위원장은 스스로 조계사를 나갈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경찰 1000여명은 이날 오후 3시쯤부터 조계사를 에워싸고 '한상균 체포작전'에 들어갔다. 강신명 경찰청장이 8일 오후 "한 위원장이 9일 오후 4시까지 경찰에 자진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강제 집행할 것"이라고 한 데 따른 조치다. 조계종 직원 200여명이 한 위원장이 숨어 있는 조계사 도심포교 100주년 기념관 부근에 진을 치면서 경찰과 충돌이 빚어졌다.

그러나 경찰이 조계종 관계자들을 한 명씩 끌어내면서 오후 5시쯤엔 기념관 건물로 들어가는 길이 뚫렸다. '조계종이 10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 거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승 총무원장의 기자회견은 경찰이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길을 확보해 진입을 시도하기 직전에 나왔다.

자승 총무원장의 기자회견 직후 민노총도 '한 위원장 거취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민노총은 이날 밤 9시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했다. 민노총은 전날 경찰이 한 위원장에 대한 영장 강제 집행 방침을 밝히자 수도권 조합원들에게 '9일 조계사로 모이라'고 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날 조계사 부근에 모인 민노총 조합원은 많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민노총 측은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강제로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순교자' 내지는 '희생자' 이미지를 연출하려 한 것 같다"며 "민노총이 그린 그림에도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