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아키라 도쿄대 명예교수는“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적 경향을 비판하기 이전에 자국의 역사 인식부터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70여년간 일본은 거의 5년마다 한 번씩 크고 작은 전쟁을 겪었다. 반면 1945년부터 전후(戰後) 70년간은 평화로운 시대였다. 왜 지금 일본이 평화를 버리고 전쟁의 시대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라 아키라(原朗·76)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중·일 전쟁 당시의 전시(戰時) 경제를 전공한 일본 경제사 연구자다. 지난 7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담화를 비판하는 일본 역사학·법학·정치학자 74명의 공동 성명에 참여했던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당시 아베 담화에는 '러·일 전쟁이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라 교수는 "러·일 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한국에 대해 본격적인 식민 병합에 나섰다는 사실을 아베 담화는 간과했다"면서 "아베 총리 스스로 역사 인식 결여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하라 교수는 최근 '청·일, 러·일 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살림) 한국어판 발간 기념으로 방한, 고려대 등에서 강연을 가졌다. 이 책에서 특이한 사실은 일본의 식민 침탈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던 1894년의 청·일 전쟁과 1904년의 러·일 전쟁을 각각 '제1차 조선 전쟁'과 '제2차 조선 전쟁'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하라 교수는 8일 인터뷰에서 "청·일과 러·일이라는 교전국 이름만 쓰다 보면 이 전쟁이 한반도의 지배권 획득을 둘러싸고 일어났다는 사실을 빼놓게 된다"면서 "특히 러·일 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강제로 대한제국을 보호국화(化)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라 교수는 이 책에서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부터 오늘날까지 150년의 일본 근현대사를 전쟁과 평화라는 관점에서 되짚는다. 1945년 패전 이전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반면, 그 이후 70년간 평화가 지속됐던 건 전쟁 포기와 교전권(交戰權) 불인정 등을 규정한 헌법 9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하라 교수는 "70년을 넘어 100년까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에 벌였던 전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라 교수는 일본의 전시 경제를 전공하다 보니 안병직(79) 서울대 명예교수 등 한국의 경제사학자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국내 학계에선 일제의 경제적 착취에 방점을 둔 '수탈론'과 식민지 시기의 경제성장에 주목한 '식민지 근대화론' 사이에 여전히 간극이 넓다. 하라 교수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수탈론'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1945년 패전 이전에는 일본이 저지른 죄과(罪過)가 컸고, 전후에는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으며, 지금은 정확한 역사 이해 없이 무조건 혐한론(嫌韓論)으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하라 교수는 "한국에서는 1919년 3·1 운동 직후 일본 경찰이 한국인들을 교회에 가두고 학살·방화했던 제암리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일본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그런데도 일본 시내 서점에 깔린 혐한론 관련 서적을 볼 때마다 서글프기만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