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만월대서 南北 공동발굴… 발굴경위·출토지 명확한건 처음

이 금속활자는 만월대가 소실된 1361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실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려 금속활자는 남북에 각각 1점씩뿐인 데다 발굴 경위와 출토지가 명확한 것은 처음이다.

개성 만월대서 출토된 금속활자(서울=연합뉴스)

[北 개성 만월대에서 고려시대 추정 금속활자 출토]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30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로 정부 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6월부터 이날까지 진행된 제7차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 조사에서 19동의 건물지와 명문 기와, 청자, 용두 등 3500여점이 출토됐다"며 "특히 만월대 서북(西北) 건축군(群) 최남단 지역 신봉문 터 서쪽 255m 지점에서 금속활자 1점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출토된 금속활자는 '嫥(전일할 전)'자로 추정된다.

개성 만월대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919년 개성 송악산 기슭에 건설한 궁궐의 터. 고려 말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됐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2007년부터 남북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발굴 조사를 시작해 올해 제7차 발굴 조사가 진행됐다.

최광식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이 3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공동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금속활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최광식 위원장은 "제작 시기, 서체, 성분 분석 등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먹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을 포함한 과학적인 조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하기로 논의했다"고 했다.

만월대 불탄 1361년 이전 제작… 直指보다 최소 16년 앞서

南北이 발굴한 고려 금속활자

지난달 14일 오전 10시 40분. 출토된 흙을 체로 쳐서 거르던 북측 조사팀이 다급하게 김홍수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을 찾았다. 흙덩어리에서 새끼 손톱만 한 활자가 나왔다는 것. 남측 조사팀이 달려가 살펴보니 고려 금속활자로 보였다. 남측 조사단은 곧바로 사진을 찍고 유물 실측을 했다.

출토된 금속활자는 '전일할 전(嫥)'자로 추정된다. 최광식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은 "오른쪽 아래의 '寸'이 '方'자로도 보여서 향후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크기는 가로 1.36㎝, 세로 1.3㎝, 높이 0.6㎝. 글자면을 제외한 몸체의 두께는 0.16㎝다. 뒷면에는 세로지름 0.93㎝, 가로지름 1.08㎝의 홈이 파여 있다.

활자 (서울=연합뉴스) 남북공동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에서 지난 11월 14일 만월대 서부건축군 최남단 지역 신봉문터 서쪽 255m 지점에서 출토된 금속활자의 앞면(왼쪽)과 뒷면. (서울=연합뉴스)

고려 활자는 실물이 희귀하다. 남북에 각각 1점이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복(㠅)'자는 일제시대 일본 상인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출토지가 확실치 않다.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된 '전(이마 전)'자는 1956년 북측이 6·25 전쟁 중 파괴된 만월대 유적을 보수 정비하는 과정에서 신봉문(神鳳門) 서쪽 300m 지점에서 발견됐다고 전한다.

이날 개성에서 실물을 확인한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이번에 출토된 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있는 고려활자와 글씨체는 다르지만 뒷면에 움푹 홈이 파여 있는 형태가 비슷하다"고 했다. 협의회는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활자 2점과 비교해 볼 때 글자체가 정교하며 활자의 모양도 정사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반듯하다. 주조 기술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1377년 '직지'를 찍은 활자는 불경 인쇄를 위해 사찰에서 만들었지만, 이 활자는 출토지가 고려 왕궁터인 만큼 국가가 주도해 만든 최고 수준의 활자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고려 활자서 어떻게 20세기 인공 성분이…"]

학계는 출토지가 명확한 고려활자 실물이 나온 만큼, 최근 논란 중인 '증도가자' 진위를 검토하는 데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허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