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현지 시각) 파리 테러 이후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가장 중요한 거점인 시리아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이 이어졌다. IS의 수도 격인 시리아 락까에서는 일부 지도부가 탈출했고, 사상자와 이탈자들이 속출했다. 자신들의 본거지인 시리아·이라크 지역에서 타격을 입은 IS는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새로운 활로(活路)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리비아 민병대 지휘관인 오마르 아담은 "(시리아 공습 후) IS 지도부가 리비아로 대탈출(great exodus)하고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IS가 리비아의 지중해 연안 도시 시르테시(市)를 점령·통치하며 조직원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고 29일 보도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외신들이 전한 시르테의 최근 풍경은 완전히 IS가 장악한 모습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음악 대신 IS의 최고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를 칭송하는 연설이 흘러나온다. 건물에는 IS를 상징하는 검은 깃발이 꽂혀 있다.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차도르 등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다. 학교에서는 IS가 승인한 과목만 가르치고, 남녀가 나뉘어 수업을 듣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IS가 경찰, 법원 조직을 만들고, 세금까지 거두며 마치 국가처럼 도시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 도시는 IS가 시리아·이라크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 통치권을 장악한 곳이다.

IS는 지난 2월 시르테에 처음 진출했다. 최고위급인 아부 나빌이 대원 200여명과 함께 투입됐다. 최근에는 이라크 혁명수비대 출신 아부 알리 알 안바리〈사진〉가 지중해를 건너왔다. 언론에서 바그다디 사망설이 나올 때면 유력한 차기 지도자 후보로 언급되는 핵심 인물이다. 현재 시르테에는 IS 대원 5000여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시르테 인근 도시 아부그레인·노팔리야까지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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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는 리비아 내전(內戰) 덕에 쉽게 영토를 장악했다. 리비아는 지난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사망 이후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한 이슬람 주정부와 동부 투브루크의 친서방 정부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대립하고 있다. NYT는 "두 파벌이 (IS를 내쫓는 것보다) 서로 싸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리비아에는 IS와 싸울 정부군도, 반군(叛軍)도 없는 것이다. IS는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에서 카다피 사망 이후 지도자를 잃은 민병대를 흡수하며 세력을 넓혔다.

전문가들은 "IS가 전략적 요충지인 시르테를 거점으로 삼으면, (시리아·이라크에 근거지를 둘 때보다) 서방세계에 더 위협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임 말카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리비아는 북아프리카 지하디스트들이 모이는 허브(hub)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유럽도 가깝다. 시르테에서 지중해만 건너면 바로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까지 643㎞다. 시르테 동쪽에는 주요 유전(油田)과 정유 공장도 있다. 서방 전문가들이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이들이 원유 무역에 차질을 주는 상황이다.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원유 중 상당량이 항구 도시인 시르테를 통해 선적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방 국가들이 리비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 서방이 시리아에 개입하는 건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가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쓰는 등 만행을 저지른 데다, 이 지역에서 테러를 저지르고 있는 IS에 맞서기 위해서다. 그러나 리비아에는 카다피 축출 이후 뚜렷한 개입 명분이 없다. 현재까지 리비아의 IS를 겨냥한 공습은 한 차례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