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라. 잠잠했던 록 음악계에 신성(新星)이 나타났다. 엘튼 존이란 23세의 영국인이다."

1970년 8월 25일 미국 샌타모니카의 400석짜리 소극장 '트루바두르 클럽'. 이날 열린 엘튼 존의 미국 데뷔 공연을 본 LA타임스의 전설적인 음악기자 로버트 힐번의 리뷰 기사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그는 이 공연이 "거의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다"며 "엘튼 존은 최고의 록스타 중 하나로 등극할 것"이라고 했다. 그 예언은 실현됐지만, 이후 엘튼 존의 소극장 공연을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해졌다.

엘튼 존은 공연 도중 수시로 피아노 앞에서 일어나 관객들을 향해 소리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지난 27일 서울 이태원의 공연장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그 불가능했던 일이 실현됐다. 500명을 수용하는 이곳에서 엘튼 존이 세 번째 내한 공연을 했다. 신성에서 거성(巨星)이 된 68세 노익장은 노래, 피아노 연주, 에너지, 밴드 세션과의 호흡, 공연 구성 등 모든 면에서 보는 이를 압도했다. 첫 곡 'The bitch is back'부터 'Candle in the wind' 'Goodbye yellow brick road' 'Your song' 등 명곡으로 100분을 꽉 채웠다. 특유의 미성(美聲)이 뭉툭해진 대신 힘이 더해져 작은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쉴 새 없이 황홀한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면서도 열광하는 관객들을 향해 웃고 또 웃었다. 아이같이 천진한 무대 매너부터 실수도 자연스럽게 덮는 임기응변까지, 공연의 모든 게 음악이었다. 45년 전 로버트 힐번이 느꼈을 흥분에 공감할 수 있었다.

다만 'Levon'과 'Rocket man'에서 피아노 독주를 선보일 땐 저음(低音)부의 음향이 심각하게 불안정해서 몰입을 방해한 점이 아쉬웠다. 앙코르곡인 'Crocodile rock'에서 '나나나'로 이어지는 고음 후렴부도 역시나 관객들에게 넘겼다. 물론 훌륭한 공연의 사소한 결점일 뿐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보니 촌스러운 반짝이 장식이 달린 엘튼 존의 상의가 무지개색으로 빛났다. 그는 1976년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했고, 작년에 21년간 함께 산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무지개는 성소수자 인권의 상징이다.

500석짜리 공연이라 일찌감치 표가 동났다. 예매 전쟁에서 승리한 관객 대부분은 30~50대였다. 배우 이서진, 가수 이승기 등 연예인도 몇 명 보였다. 티켓 가격(20만원)이 비싸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공연 수입은 1억원 남짓. 엘튼 존의 개런티도 못 될 돈이다. 주최사인 현대카드는 수억원의 손해를 감수하며 공연을 성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