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과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김덕수(이하 덕수). 이들 두 사람의 공통 분모는 그다지 많지 않다. 서로 고향이 다르다. 나이도 열댓살 차이 난다. 덕수는 민초(民草)이고, YS는 ‘정치 거목’이다. 더욱이 ‘덕수’는 허구의 인물이다. 하지만 ‘공간’이란 관점에선 공통점이 있다. ‘부산’이다.

함경도 흥남에서 넘어온 ‘덕수’는 부산에 정착, 국제시장을 무대로 삶을 풀어간다.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YS는 부산이 정치적 고향이다. 국내 최다선인 9선의 국회의원 중 7선(1960~1991년)을 부산 서구에서 했다. 태어난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25살 때 정치사상 최연소로 처음 국회의원이 됐고, 1992년 민주자유당 총재로 전국구에 당선돼 9선을 기록했다.

6·25 전쟁, 파독광부, 월남전…. ‘덕수’는 한국 현대사를 온 몸으로 부대끼며 눈물겹게 살아간다. ‘덕수’의 이야기는 142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 국내 영화사상 2위를 기록했다. 가택연금, 단식, 국회의원 제명…. YS는 시대적 격랑 속에 민주화의 선봉으로 치열한 일생을 보냈다. ‘민주화의 거성’, ‘부산이 낳은 정치 거목’…. 부산 사람들은 이렇게 YS를 추모했다. 지역 언론은 ‘PK가 낳은 민주화 巨山 스러지다’고 애도했다.

이들의 공통점, ‘부산’을 좀 더 확장시켜 보자. 영화 ‘해운대’는 관객 1145만명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변호인’은 관객 1137만명을 동원했다. 지금까지 관객 1000만명을 넘은 국내 영화는 모두 13편. 이중 3편이 부산을 소재로 한 것이다. 2001년 개봉돼 8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당시 역대 최다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 ‘친구’도 부산을 무대로 했다.

부산은 요즘 정계서도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의화 국회의장 등이 모두 부산 출신이다. 김·문 대표는 경남고, 정 의장과 안 고문은 부산고 출신이다. 이처럼 ‘부산’이 여야 정치의 중심이 된 건 아마도 건국 이래 처음일 것이다. 또 YS가 정계에 입문시킨 고 노 전 대통령도 김해 진영 출신이지만 부산이 정치적 고향이다.

여기까지는 ‘YS와 덕수’로부터 시작된 공간, ‘부산’의 얘기다. 이 방향을 거꾸로 해 공간, ‘부산’에서 ‘덕수와 YS’로 가보면 어떨까?. ‘공간’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변방의 시골 어촌이었던 부산은 근대 이후 세계적 항구도시로 도약했다. 대한민국의 성장, 발전과 궤를 같이 했다. 이름은 ‘산(山)’이지만 ‘바다’, ‘항구’가 그 발판이었다.

‘바다’, ‘항구’는 개방과 교역, 포용과 멜팅(melting), 다양과 역동을 그 특징으로 한다. 세계, 한국의 온갖 사람과 물건, 돈, 정보들이 모이고 드나든다. 삶은 그 안에서 파란만장, 우여곡절들을 만들어 낸다. 부산은 광복, 6·25 땐 몰려드는 귀환동포·피란민을 품었다. 근대화 시대엔 대부분의 수출입 물품들이 세계로, 국내로 오가는 주무대였다.

‘국제시장’ 등 영화들은 이런 ‘부산성(釜山性)’을, 곡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고 ‘YS의 정치’는 ‘부산성’을 현실과 사회에서 발현시킨 것이라 읽을 수 있다. 개방, 포용, 멜팅, 다양 등 ‘부산성’을 시대, 지금에 맞게 풀어내고 발현시킨다면 또 다른 ‘국제시장’, ‘YS’가 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문 대표, 안 고문 등 ‘부산의 아들’들이 넘어야 할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