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국제대학원 교수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는 탈냉전 후의 세계가 '문명의 충돌'로 점철될 것이라고 보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이번 테러도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대결로 비친다. 하지만, 파리에서의 자살 테러는 문명의 충돌이라기보다는 이슬람 극단 과격주의자들에 의한 문명 부정이자 문명 파괴 행위다. 일상을 즐기는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고, 자살 테러라는 생명 부정 행위를 테러의 방법으로 사용했다. 자신들은 절대 선이라고 믿고 다른 세력은 절대 악이니 살상해도 괜찮다는 이데올로기적 맹신은 비문명적이자 반인도적이며 반인륜적이다. 이들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이유다.

글로벌화의 상징으로 지역 통합이 굳건해진 유럽 한복판에서 이러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인류 문명에 대한 경종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유럽의 탈경계와 다문화사회, 그리고 탈민족주의를 역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럽에 우파 정서가 크게 고개 들고 있다. 그리스의 경제 파탄으로 인한 유럽 국가 간 경제 격차의 확대, 시리아 내전 여파로 급작스레 늘어나는 난민 홍수에 이어 이슬람국가(IS)에 의한 무차별 테러가 우익에 힘을 실어준다.

유럽 우익은 국경을 넘어선 통합, 인종과 종교를 넘어선 화해, 이질적 문화와의 공존을 주장하는 정치 세력 등에 대항한다. 아프리카 및 중동으로부터 난민 유입을 거부하고, 이슬람을 믿는 시민을 차별하고, 이민을 통제하기 위해 국경의 벽을 높이자고 주장한다. 유럽 통합에서 꽃을 피운 탈근대(post-modernism)를 거부하고 근대(modernism)로의 회귀를 외친다. 우익의 이념은 지극히 근대적이다. 이질적 문화에 대한 우월 의식과 차별, 국경 폐쇄를 통한 배제적 국민국가 재건, 개방적 공유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이 깔려 있다.

일본 우익 사상의 근저에도 그 연원과 주장에 차이가 있지만 차별과 배제,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부정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일본의 우익들은 일본에서 차별을 받는 재일교포들을 오히려 특권계급이라고 몰아붙이면서 '혐한류'를 조성했다. 인종이나 국적, 성별 등을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가져갈 수 있는 재화를 이등 시민이 가져간다는 차별의식의 발로이다. 그러면서도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한다며 담화가 마치 정치적 타협의 결과인 양 본질을 왜곡하고, 일본은 잘못을 저지른 나라가 아니라는 식으로 변명한다. 자기네가 필요할 땐 자국민이라고 동원하더니 전쟁이 끝난 후엔 철저하게 배제하는 우파 사상의 발현이다. 최근에는 태평양전쟁 전범을 단죄한 도쿄 재판을 비판적으로 검증해보겠다고 나섰다. 도쿄 재판과 평화헌법은 패전한 일본에 대한 응징과 복수로서 자국을 압박하고 옥죈 질서였기 때문에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은 도쿄 재판의 검증을 통해 마무리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개헌을 달성하려면 일본이 나쁜 나라라는 자학적 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미국이 조성한 전후 질서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생각의 근저에는 일본과 미국이라는 근대국가의 대결과 상호 부정이 존재한다.

유럽과 일본의 우익 사상은 그들의 정반대 편에서 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IS의 원리주의와 뿌리를 달리하지만 묘하게 닮은꼴이다. 차별과 배제, 상대방의 부정이 있을 뿐, 공존과 화합, 관용과 배려가 없다. 문명의 충돌을 옹호할 뿐, 문명과 문명 간 대화와 화해의 여지는 없다. 상대방 문명에 대한 대등한 가치 부여도 없다. 무엇보다 문명권을 넘어선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존중이 보이지 않는다. 개방과 화합, 상호 존중과 공생이야말로 인류 문명이 만들어 낸 역사적 발전의 산물임을 망각하고 있다. 일본의 우익도, 유럽의 우익도 간과하기 쉬운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