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 386조원의 용처(用處)를 세부적으로 조정하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가 거의 막가파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 우리 국회라고는 해도 올해는 세금 내는 국민이 보거나 말거나 너무 노골적이어서 기가 찰 정도다.

예결특위에는 예산소(小)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개별 사업의 예산 액수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결정하는 곳이다. 예산소위 위원은 나라 살림 전체를 살필 수 있는 안목과 함께 사업 하나하나의 내용을 꿰뚫어보는 전문성도 겸비해야 한다. 이곳에 배당된 야당 정원은 7명이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1명 더 많은 8명을 할당한 뒤 매일 한 사람씩을 순번제로 빠지게 하는 식으로 운용키로 했다. 지역별, 계파별로 할당하려다 보니 7명으로는 부족해 이런 기발한 방식을 쓴다는 것이다. 새누리당도 호남 지역 몫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호남 지역구 의원을 추가로 끼워넣으려다 비판이 일자 철회했다. 새누리당 예산소위 자리도 지역과 계파별로 철저하게 나눠 먹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여야의 행태를 보면 예산소위 위원이라는 자리가 지역 로비스트, 계파 로비스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매년 '쪽지 예산' 같은 의원 개개인의 민원 예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회는 심사 시스템을 바꿔 투명하게 하겠다고 다짐해왔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예산을 나눠 먹는 수법만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총선을 앞둔 올해는 여야를 막론하고 나라 살림살이를 갉아먹는 선심성 지역 개발 예산이 대거 끼어들 게 뻔하다.

국회의원들이 이렇게까지 막가는 것은 사고를 쳐도 여야가 손잡고 치면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욕먹다 곧 잊히는 현실도 이들을 점점 더 제멋대로 행동하게 만들고 있다. 국회의 권력이 커지자 나라와 국민에게 좋아진 것은 없고 갈수록 기막힌 일들만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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