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많은 직업 중 큐레이터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최근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355개 직업 재직자 1만2566명을 조사한 결과 '전반적 직무 만족도' 영역에서 큐레이터 및 문화재 보존원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2위는 아나운서 및 리포터, 3위는 실내장식 디자이너, 4위는 미술사 및 기타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 5위는 항공기 조종사다. 이 밖에 판·검사가 6위, 한의사가 7위, 대학교수가 10위를 차지했다. 직무 만족도 최하위 직업은 건설 및 광업 단순 종사원이다.

'미술 전시 기획자'를 뜻하는 큐레이터는 겉으로는 '우아한 백조'처럼 보이지만 사실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이다. 전시 개념이 결정되고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면 끼니를 거르는 것은 물론, 밤샘하기도 일쑤다. 작품 설치를 시작하면 못과 망치를 들고 직접 작품을 거는 경우도 허다하다. 큐레이터 대부분이 석사 이상 고학력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직군보다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한 큐레이터는 "미술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는 초봉이 연 2500만~3000만원 정도, 화랑에서 일하면 초임이 월 130만~15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미술계에서 큐레이터직을 두고 '3D 업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부터 설명까지 전시회의 모든 것을 총괄한다. 사진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작품을 설명 중인 큐레이터.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1990년대 중반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4년 1월 쌍용제지의 화장지 TV 광고에 '큐레이터 김선정'이란 자막과 함께 등장한 여성 덕분이었다. 이 광고 모델 김선정씨가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이 우선 화제였지만, 그를 수식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도 그에 못지않게 높았다. 큐레이터는 그 광고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2007년 큐레이터 출신인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 위조 파문으로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큐레이터는 이번 연구에서 함께 진행된 '직업별 수입 만족도 조사'에서는 2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수입 만족도 1위는 변호사, 2위는 일반 기계 조립원, 3위는 의사, 4위는 투자 및 신용 분석가, 5위는 치과 의사가 차지했다.

노동 강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데도 큐레이터직의 직무 만족도가 높은 요인은 뭘까? 이 연구를 진행한 한상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 연구위원은 "전문성이 높고 사회적 평판이 좋으며,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직무 만족도가 높다. 특히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들이 직무 만족도가 높은데,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닌데도 작가가 20위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인들은 '환상'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큐레이터는 우리 사회에서 '예술에 대해 높은 전문성을 지닌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큐레이터의 직무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독립 큐레이터 김지연씨는 "생산적인 일이라는 점, 에너지 넘치는 예술가들을 만나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전시회를 만드는 일에서 얻는 성취도가 높다는 점 등이 큐레이터들이 자기 일에 만족하도록 하는 요인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