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정상회담의 선물을 받아간 아베 일본 총리가 귀국 즉시 오리발이다. 위안부 문제의 "연내 타결이 어렵다"거나 "법적 책임이 없다"며 발을 빼고 있다. 11일 열린 한·일 국장급 회담에서도 일본은 아무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강력한 외교 압박을 통해 일본 정부의 반성을 이끌어낸다는 박근혜 정부의 전략이 실패한 셈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정부가 나서 호통치고 팔 비튼다고 말 들을 아베 정권이 아니었다. 위안부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참담한 것이 있다. 우리에겐 왜 제대로 만든 위안부 영화 한 편, 널리 기억되는 위안부 소설 한 편 없을까. 유대인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대학살)를 수천 편의 영화와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 세계에 고발했다.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1993년 아카데미상)를 제작했고, 노벨 문학상(2002년)을 수상한 임레 케르테스는 '운명'을 썼다. 유대인의 핍박사(史)가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인류의 정사(正史)로 기록된 데는 문화 발신(發信)의 힘이 컸다.

중국이 자랑하는 거장(巨匠) 장이머우 감독은 난징(南京) 대학살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가 메가폰을 잡아 2011년 개봉한 '진링의 13소녀'엔 우리 돈으로 무려 1000억원이 투입됐다. 중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였다. "아카데미를 통해 세계에 난징 학살을 알리자"는 장이머우의 제안에 중국 투자자들이 호응해 돈을 댄 것이었다. 이 영화는 그해 중국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라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해외에서도 개봉됐다. 장이머우의 희망대로 아카데미상을 받진 못했지만 전 세계에 난징 학살의 실상을 알리는 데 역할을 했다.

우리에겐 무엇이 있나.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위안부로 강제 징용당한 사실을 처음 고백한 것이 1991년이었다. 그 후 생존자 증언이 잇따르고 자료들이 발굴되면서 위안부 문제는 온갖 인권 유린의 참극이 녹아 있는 비극의 도가니가 됐다. 그런데 기막힌 것은 문화계의 주류(主流)가 이 참담한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왜 '쉰들러 리스트'나 '진링의 13소녀'가 없나. 수많은 영화감독과 제작자, 그 고상한 척하는 문화 권력자들은 무엇 하고 있는 걸까.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영화 '귀향(鬼鄕)'이 곧 세상에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든 이는 조정래(43)라는 신인 감독이다. 그가 이 영화를 구상하고 기획한 것은 13년 전이다.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8)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에 충격받아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나 투자자를 구할 수 없었다. 수많은 제작사와 기업·기관들을 찾아다녔으나 모조리 거절당했다. 결국 일반인 모금을 통해 4만5000여 명으로부터 6억원을 모아 촬영에 나설 수 있었다. 중국의 난징 학살 영화는 최고의 거장이 천문학적 돈을 쓰고, 한국의 위안부 영화는 무명(無名)의 감독이 빚에 쪼들리며 만든다.

모자라는 제작비는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재능 기부로 메워주었다. 손숙씨를 비롯한 조연 배우들은 시간을 쪼개 무보수로 출연했다. 악전고투 끝에 겨우 촬영을 마쳤지만 이번엔 상영관을 잡을 수 없었다. 돈벌이 안 되는 위안부 영화를 흔쾌히 걸어줄 배급사는 없었다.

몇 편의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를 제외하면 '귀향'은 위안부 문제를 다룬 두 번째 극(劇)영화다. 지난 24년간 단 두 편의 영화가 제작됐다는 것부터 믿을 수 없는 얘기다. 작년엔 첫 번째 상업 영화 '소리굽쇠'가 개봉됐으나 며칠 만에 스크린에서 철수했다. 장이머우의 난징 학살 영화는 3600만명이 관람했지만, 한국의 위안부 영화는 상영관 잡기조차 힘들었다.

'귀향' 역시 흥행 요소가 많아 보이진 않는다. 제작비는 쥐꼬리만 한데 재미있는 볼거리까지 기대하는 것부터 무리일지 모른다. 의외인 것은 출연진에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이 9명이나 들어 있다는 점이다. 주연 강하나(16)양은 오사카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교포 4세다. 그녀는 일본 혐한파(嫌韓派)에 공격당할 것을 각오하고 출연을 수락했다고 한다. 다른 교포·일본인 출연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 영화인이 꺼리는 일을 이들은 왜 자기 돈까지 써 가며 흔쾌히 맡았을까.

이 영화는 재미가 아니라 '뜻'으로 봐야 할 영화다. 슬프고 불편하고, 화면을 주시하기가 고통스럽다. 그것은 성 노예로 유린당한 위안부의 역사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스럽다 해서 보지 않고 외면한다면 일본의 무책임함을 추궁할 자격이 없다.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분통만 터트릴 게 아니다. '쉰들러 리스트'처럼 국제적 공감을 받는 위안부 영화 한 편만 나와도 일본은 견디지 못한다. 거장 임권택 감독이나 해외 인지도가 높은 봉준호·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국민 성금으로 제작비를 모으면 어떨까. 그렇게 일본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면서도 이렇다 할 영화 한편 못 만든 우리의 나태함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