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지은(가명)이가 스케치북에 그린 가족은 모두 7명이었다. 지금은 떨어져 사는 엄마와 엄마의 남자 친구, 함께 살고 있는 아빠와 새엄마, 할머니와 동생이 둥글게 서서 손을 잡고 있었다. 모두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지은이 부모는 1년 전 이혼했다.

"지은이는 매주 한 번은 엄마를 꼭 만났어요. 엄마가 새로 생긴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고, 같이 놀러다니기도 했고요. 덕분에 지은이는 부모가 이혼했어도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더 늘었다'고 느끼는 겁니다. 부모는 이혼해도 아이는 행복할 수 있어요. 어떻게 이혼하느냐에 달린 거죠."

법원의 가사 상담위원 강은숙(48)씨는 매주 20명 넘는 이혼 부부의 아이들을 만난다. 상담실엔 장난감과 모래 상자, 그림 도구가 가득하다. 아이와 함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장난감 가득… 여기가 법원 상담실이에요 - 강은숙 상담위원이 서울가정법원 615호 아동심리상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상담실에는 아이들이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그득하다.

이혼 부부를 위한 상담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아이를 위한 상담은 2009년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처음 시작해 7년째를 맞고 있다. 대학원에서 아동복지학을 전공한 강씨는 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상담사로 일했다. 그러다 안산지원이 2009년 강씨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이혼 부부 아이들을 상담해 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 강씨는 그 이후 안산지원은 물론 서울가정법원, 수원지법, 고양지원 등 5개 법원의 상담위원으로 일하며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혼 부부 아이들을 상담한 시간이 6000시간을 훌쩍 넘었다. 가끔은 판사와 상담사들을 위한 강의·교육도 한다.

강씨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헤어진 부모를 계속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다섯 살 수정(가명)이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지만 상담실에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꾸밀 땐 반드시 의자 세 개를 놓는다. 찾아오지 않는 아빠의 자리다. 강씨는 "아이가 갈라선 부모와 만나는 것은 부모의 선택이 아닌 아이의 권리"라고 했다.

이혼한 부부가 가장 피해야 할 일은 자녀에게 배우자 흉을 보는 것이다. 강씨에게 상담받는 아이 가운데 중3 여학생 현아(가명)가 있었다. 현아는 가끔 "내 몸의 피를 바꿀 수 있다면…"이라고 넋두리를 했다. 현아가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가 아빠의 외도 사실을 생중계하다시피 하면서 현아 마음 깊숙이 아빠에 대한 증오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강씨는 "부모의 증오나 고민을 듣게 된 아이는 그 나이에 걸맞은 친구 관계,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부모의 고민과 증오를 대신 품게 된다"며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고 했다.

강씨는 이혼하더라도 진행 과정을 아이들에게 찬찬히 설명해주는 게 현명하다고 했다. 자녀 둘 키우는 부부가 이혼할 때 한 명씩 나눠 양육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강씨가 상담한 아이들 가운데는 "왜 엄마는 날 버리고, 동생을 뺏어갔어요?"라고 부모에게 항의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이들을 부부가 나눠 키우는 것은 아이들도 이혼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강씨는 상담받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아이를 위한 이혼 7계명'을 들려준다〈그래픽 참조〉. 또 이혼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했지만 헤어지기로 했다. 그래도 너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을 거야'라고 반드시 속삭여주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강씨는 "이혼은 슬픈 일이지만, 상담을 해보면 꼭 재결합이 아니더라도 이혼을 극복한다는 느낌을 공유할 때가 많다"며 "건강한 이혼이라는 말은 조심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혼이 '가족의 단절'이 아닌 '가족의 변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