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장관을 비롯해 청와대와 내각의 전·현직 고위인사들이 집단적으로 총선 출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8일 사퇴 선언을 한 데 이어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두 사람은 대구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수석을 지낸 윤두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도 대구 출마를 준비 중이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조만간 사퇴한 뒤 대구·경북이나 부산에 출마할 것이란 말이 나온다. 백승주 전 국방부 차관은 경북,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대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유일호 국토교통부·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에 이어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도 곧 물러날 것이라고 한다.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박종준 전 경호실 차장, 민경욱 전 대변인 등도 출마를 준비 중이다.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내각과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이처럼 대규모로 총선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4대 개혁과 국정교과서, 경제 문제 등 국정 현안 처리에 최우선을 둔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선거 관리의 책임을 진 행자부 장관과 경제 분야 핵심 장관들까지 총선으로 들썩거리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인사 때마다 좁은 인재풀과 잇단 검증 실패로 국민을 실망시켰던 청와대가 이번엔 총선용 '누더기 개각'으로 국정 혼선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청와대는 그간 선거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대통령 측근들이 대통령 재가나 묵시적 동의 없이 이렇게 너도나도 출마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종섭 장관은 9일 "총선 출마는 내가 말씀드릴 사항이 아니다"고 했다. 그럼 도대체 누가 답변해야 할 사안이란 말인가.

청와대는 대통령 측근들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집단으로 움직이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세간에는 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 국정 장악력을 높이고 퇴임 후 정국까지 감안해 친위(親衛) 세력 구축에 나섰다는 말이 나돈다. 청와대와 대립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을 물갈이하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로 측근들이 출마하려는 지역은 대구·경북, 그중에서도 친(親)유승민계 의원들의 지역구가 많다.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윤상현 의원은 8일 유승민 의원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 빈소에서 "대구·경북에서 물갈이를 해서 '필승 공천'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 조화(弔花)를 빈소에 보내지 않았다고 논란이 일던 상황에서 오해를 사기 충분한 말이다.

대통령 측근들이 호남까지는 아니라도 수도권이나 충청·강원 등 여권의 약세 지역에서 출마한다면 그나마 '외연(外延) 확장'이라는 명분은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측근은 '공천=당선'인 지역에서 대통령 개인의 후광(後光)을 업고 손쉽게 당선되려는 의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인 중심으로 텃밭의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지극히 협량(狹量)한 정치를 하려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처신은 여권 내 공천·계파 갈등을 부추겨 총선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민 눈에는 명분이 불분명한 대통령 측근들의 출마 러시는 사적(私的)인 정치 결사체를 만들기 위해 국정(國政)을 내팽개치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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