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는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의 폭탄 테러로 공중 폭발했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은 4일 "기내에 있던 폭탄 장치가 폭발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미국 CNN 방송도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IS 또는 추종 세력이 비행기에 설치한 폭탄 때문에 여객기가 추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국제 조사단의 공식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영국 등 신뢰할 만한 정부 관계자가 잇따라 'IS 테러'를 거론하면서, 그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이에 따라 민간인을 상대로 한 IS의 대규모 테러 공포에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IS에 의한 폭탄 테러 가능성 커"

지난달 31일 이집트 홍해 인근의 관광도시 샤름 엘 셰이크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러시아 여객기가 이륙 23분 만에 추락해 탑승자 224명이 전원 사망했다. IS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러시아·이집트 정부는 "IS는 높은 고도의 비행기를 격추할 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이를 일축했다.

지난 1일(현지 시각) 구조대원들이 이집트 시나이 반도 하사나 인근에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 사고 현장에서 처참하게 부서진 비행기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이후 현장조사 결과, 여객기 잔해는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었다. 또 미국 정보위성은 당시 사고 지역에서 강한 섬광을 포착했다. 모두 비행 중 공중 폭발을 뒷받침하는 징후들이다. CNN은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IS 내부 통신을 감청한 결과도 IS를 여객기 추락 배후로 지목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4일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사고기 블랙박스(조종실 음성녹음장치와 비행기록장치)를 예비 조사한 결과, 추락 직전 조종실에서 비정상적인 소음이 녹음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방 언론들은 공항 내부 직원이 이번 테러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공항 직원이 몰래 폭탄을 실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CNN은 "샤름 엘 셰이크 공항은 보안이 허술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IS는 4일 러시아 여객기 추락이 자신의 소행임을 주장하는 새로운 동영상을 공개했다. IS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돼지"라고 지칭하며 "여객기 테러는 시리아 공습에 대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대규모·무차별적으로 변하는 IS 테러

IS는 그동안 주로 생포한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인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공개해 왔다. 특정 표적을 겨냥한 소규모 테러였다. 하지만 최근엔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대규모 테러를 저지르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달 앙카라에서 102명을 살해한 자살폭탄 테러의 배후도 IS인 것으로 드러났다. 가디언은 "만약 러시아 여객기 추락이 IS 테러로 인한 것이라면, IS가 라이벌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가 9·11 테러 이후 실행하지 못한 대규모 테러를 성공시킨 셈"이라고 분석했다.

IS가 시리아·이라크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 민간인을 겨냥해 테러를 저지르기 시작하면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에미레이트항공, 에어프랑스, 루프트한자 등은 시나이반도 상공 비행을 금지하거나 우회 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시나이 반도 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영국은 4일부터 시나이 반도를 오가는 항공편 운항을 무기한 중단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이튿날 샤름 엘 셰이크에 있는 자국 관광객 2만여 명을 송환하는 긴급 조치를 취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집트는 "영국의 조치가 성급하다"며 반발했다. 샤름 엘 셰이크는 매년 수십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는 주요 관광지다. 이집트가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