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결국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國定化)를 밀어붙였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3일 담화를 통해 "교과서에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편향성만 남았고, 학교의 자율적 선택권이 사실상 배제된 현행 검정(檢定) 발행 제도는 실패했다"며 "객관적 역사 사실에 입각해 헌법 가치에 충실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국정화를 시행한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에 반발해 예산결산특위, 해양수산부 장관 인사청문회 등 국회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정부의 국정화 방침에 따라 2017년 3월부터 정부가 발행하는 단일 역사 교과서가 전국 중·고교 교실에 배포된다.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부 차관이 고시(告示)하면 끝나는 행정부 고유 권한이다. 위헌(違憲)도 아니고 위법(違法)도 아니다. 국정화는 정부가 의지와 판단에 따라 결정하고 시행하면 누구도 막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행 검정 교과서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몇 글자를 고치거나 더하고 뺀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 아니다. 그 밑바닥과 행간(行間)에 흐르고 있는 집요한 반(反)대한민국 정서가 더 큰 문제다. 대한민국을 친일·독재·분단 세력이 이끌어온 나라처럼 가르치는 교과서로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 교육이 목표로 하는 애국심을 길러줄 수 없다. 교과서가 이렇게 된 일차적 책임은 지난 30여년 비뚤어진 국가관·역사관으로 근현대사 연구를 좌지우지해 온 학자들과 이들의 주장을 충실히 옮긴 교과서 필자들에게 있다. 교과서를 부실하게 검증한 교육부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역사 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고 추진한 국정화 방침이 오히려 반대 진영의 목소리를 키우는 결과를 낳은 것은 역설적이다. 야당과 진보·좌파는 반(反)국정의 깃발 아래 똘똘 뭉쳤고 현행 검정 교과서의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까지 이들의 국정화 반대 주장에는 함께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야당과 진보·좌파 진영은 이제 국정화가 안고 있는 약점을 공격하는 차원을 넘어 현행 검정 교과서들이 어디가 좌편향됐다는 것이냐며 큰소리치고 있다. 어떻게 재미있고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를 만들 것이냐 하는 당초 목표는 실종됐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찬성은 36%, 반대는 49%로 나타났다. 더 많은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한 채 밀고 가는 국정화 작업은 적지 않은 파란(波瀾)을 초래할 것이다. 당장 교과서 서술 지침을 발표하고 30여명에 달하는 집필진을 구성하는 문제에서부터 논란에 부딪힐 수 있다. 집필진이 공개되면 인신공격과 신상 털기가 달아오르고 공개되지 않으면 밀실(密室)작업 시비를 낳을 것이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다양한 생각을 녹여 수준 높은 교과서를 만들어낼지도 부담스러운 과제다.

국정화를 결정한 이상 이런 모든 난관과 걱정을 딛고 최량(最良)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내야 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교과서 국정화는 일차로 내년 총선에서 정치적 심판을 받겠지만, 내년 말 교과서 시안(試案)이 공개되면 그 내용을 놓고 진짜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정부는 물론 여야, 좌우 시민단체들 모두가 이제 국정화를 둘러싼 정치·이념 싸움을 넘어 오로지 역사 교육을 제자리에 올려놓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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