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욕망’을 표현하는 잡지 제목을 찾다가 ‘젖은’이란 단어를 넣게 됐다” 성(性)에 대한 표현을 솔직하게 말하는 그녀는 독립잡지 ‘젖은 잡지’ 편집장 정두리(26)씨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그녀 이름을 치면 그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앳된 얼굴에 도발적인 포즈로 찍힌 사진들도 있다. 정씨는 지난해 한 남성용 잡지사에서 주최한 모델 선발대회에서 우승하며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젖은 잡지’는 광고가 없는 독립잡지로 법적으로 정식 등록된 출판물이다. 2013년 8월에 처음 출판된 이 잡지는 30페이지 안팎, 7천 원대에 적은 발행부수로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는 100~200 페이지, 1만 원대에 1천 5백 부를 발행하고 있다. 독자층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초기에는 남성 구독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여성 구독자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녀가 만드는 잡지를 펼쳐보면 생각보다 높은 수위로 성에 대한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성이 한 데 모여 뒤섞여 있는 사진, 밧줄로 묶어놓은 표지 사진, 여성 모델이 완전 나체로 찍혀 있는 사진도 있다. 그러나 잡지의 글을 보면 남녀 성소수자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있는 인터뷰나 특정 대상에 끌리는 페티쉬(fetish)에 대한 칼럼 등 진솔한 글도 많다.

지난 20일 인천시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에 찾아가서 직접 만났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예정시간 보다 늦게 도착한 그녀는 수줍고 선한 얼굴로 평범한 20대 여대생처럼 보였다. 사진으로 봤을 때 야하다고 생각했던 그녀 모습은 만남에서 볼 수 없었다. 단독 주택 2층에 있는 그녀가 안내한 작업실로 들어서자 방 한 칸이 전부였다. 방 안엔 책상 2개와 의자 그리고 행거에 걸린 옷 그리고 스캐너와 노트북이 한 대씩 있었다. 방안에서 정 씨는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사진을 스캔하거나 잘못 쓴 글이 없는지 등 새로 나올 잡지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젖은 잡지’가 “사회적 소수자들이나 약자들의 성(性)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도색잡지를 표방한 아트북”이라며 “여성의 입장에서 성을 바라보는 잡지는 많이 없는 것 같다”며 “여성의 욕망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정씨는 어릴 때부터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받는 차별에 대해 고민했다고 했다. 어릴 때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봉변을 당한 경험도 있었다. 한 남자 어른이 갑자기 그녀를 뒤에서 와락 끌어안고 도망간 것이다. 당시 그녀는  ‘내가 여자라서 이런 일을 당하는 건가?’라고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성장 과정도 한몫했다. 가부장적인 아빠와 살며 시집살이까지 하는 엄마를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본격적으로 여성주의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23살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프랑스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존중할 것 같아서 택했다고 한다.  에꼴데보자르 드 깡 셀부르 국립 미술학교에서 아트학과에 재학하며 현재는 휴학 중에 있다. 그녀도 언어 장벽, 학비 등에 대한 고민으로 다른 유학생들 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빨리 졸업해서 잡지를 계속 만들면서 개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느릿하지만 또박 또박 소신이 강해 보였지만 그녀도 아직 잡지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들이 곱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여성이 섹스에 대해 직접 얘기하는 것이 금기시 되는 분위기에서 이런 잡지를 만드는 것을 가만히 놔 둘리 없었다.

또 성(性)에 관련된 작업을 하다 보니 남자들로 부터 성적 농담이나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정씨는 “성과 관련된 작업을 한다고 해서 성적인 비하 발언을 해도 된다는 생각은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성을 미술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는 것 뿐 비정상적이거나 비상식적인 사람은 아니다”면서 “이 잡지로 여성들이 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어갔으면 한다”고 했다.

그녀는 “예전에는 우리 잡지를 음란물 잡지로 보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소장하고 싶은 하나의 아트북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다”며 “이 잡지를 통해 여성들이 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금기시 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