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은 2일 저녁부터 국회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밤샘 농성을 벌였다. 정부가 계획보다 이틀 이른 3일에 확정고시를 발표하기로 한 것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당 지도부가 내린 결정이었다. 작년 7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 때문에 강경파 중심으로 단식 농성을 벌였던 장소에서 농성을 또 시작한 것이다.

이날 오후 7시쯤 문재인 대표 등 당 지도부와 의원 10여명은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 모였다. 의원들은 '친일 미화 중단하라! 역사왜곡 중단하라! 고시 강행 철회하라! 친일교과서 국정화 반대!'라고 쓰인 현수막을 길게 잡고 섰다. 마이크를 잡은 문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도 정부는 내일 오전 11시에 확정고시를 하겠다고 한다"며 "이런 무도한 정권, 국민을 무시하는 정권이 어딨나.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이제라도 강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발언이 끝나자 의원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즉각 중단하라"는 구호를 몇 차례 외쳤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앞줄 가운데) 대표 등 지도부와 의원들이 2일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방침에 반대하는 밤샘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야당은 작년 7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 이후 1년 3개월 만에 같은 장소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당의 국정화 저지 특위 위원장인 도종환 의원은 "국정화 강행은 오만한 정치"라고 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박정희에 이어 유신과 쌍둥이 정권을 만들려 하느냐"며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다. 의원들은 본회의장 앞에 깔개를 깔고 앉아 빨간색 글씨로 한 글자씩 쓰인 '역사 왜곡 교과서 반대'란 인쇄물 피켓도 들었다.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하다가 중간중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정교과서 반대 민심을 즉각 수용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바닥에 앉은 김한길 의원은 독재자 스탈린의 딸과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사죄를 언급하며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왜 이러시나. 다시 결단하시라"고 했다. 문 대표는 생각이 많은 듯 눈을 감고 의원들 얘기를 들었다. 이날 농성장에 머물거나 다녀간 의원들은 당 소속 의원 128명 중 60여명이었다. 비주류 김한길, 박지원 의원 등도 농성에 참여했다. 당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결정한 농성이라 지역구에 있는 의원들이 못 왔다"고 했다. 자정을 전후해 야당은 로텐더홀에서 철수하는 대신 당대표실과 원내대표실, 의원회관 등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야당은 일단 정부가 3일 확정고시를 발표하면 앞으로 국회 일정을 부분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는 뜻을 비쳤다. 장외투쟁도 병행할 계획이다. 이춘석 원내 수석 부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3일 10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는 없다"고 했다. 여야 합의로 4일로 예정됐던 양당 원내대표, 수석 부대표 간 '2+2' 회동과 5일 본회의에 대해서도 "추후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정기국회 의사일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당 대표실 관계자는 "내일 확정고시가 발표되면 투쟁 강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당내에서는 의원직 전원 사퇴, 단식 및 삭발 농성 같은 의견도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야당이 예산 처리 등 국회를 팽개치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으니 수위를 조절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지도부 의원은 "장기적으로 싸워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기구를 만들고, 야당은 여기에 참여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야당은 작년 7월부터 세월호 특별법 문제 때문에 국회 내 단식농성, 장외투쟁 등을 벌였지만, 당내 중도파 반발 등에 부딪혀 이를 접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