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프리카 초원 지대를 날다 보니 비행기 창밖 아래로 산봉우리로 가득한 작은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언덕이 워낙 많아 '천 개의 언덕'이라는 별명을 가진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였다.
지난 21일 키갈리 공항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 도심에 도착하니 곳곳이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남자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여자들은 손을 맞잡고 길을 걸었다. 20여 년 전 종족 간 내전으로 대량 학살이 벌어진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이곳에서는 1994년 인구의 84%를 차지하는 후투(Hutu)족이 소수 부족인 투치(Tutsi)족을 100일 동안 100만여 명을 살육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후 부족 간 갈등을 해결하고 꾸준한 경제성장으로 아프리카의 모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아픈 역사를 잊은 건 아니었다. 르완다 정부 관계자에게 "학살 이후 르완다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는 바로 "학교"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키갈리 외곽의 작은 초·중학교를 찾았다. 양철 지붕 건물 안에 초콜릿 빛깔 얼굴의 학생들이 보였다. 신발은 밑창이 닳고 구멍이 났지만 저마다 연필을 하나씩 쥐고 있었다. 파피우스 마사피리 교육부 장관은 "많은 나라가 식민 지배 또는 피지배의 역사를 숨기거나 왜곡하려고 하는데 이는 훗날 같은 실수의 반복으로 이어진다"면서 "르완다는 인종 학살이라는 누구보다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전면 공개하고 교과서로 정리해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학살의 나라'였던 르완다는 20여 년 만에 기적적으로 '아프리카 신흥국'이 됐다. 연평균 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작년엔 유엔이 선정한 '부패 없는 아프리카 국가'로 꼽혔다. 아무도 학살 직후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르완다가 국가 재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석유 같은 자원도 없고 대부분 산악 지역이라 농작물이 잘 자라는 것도 아니다. 내륙 국가로 바닷길도 없어 수출입 무역도 어려웠다.
하지만 르완다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며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한편, 인재 육성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을 택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크게 늘었고, 정보 통신 분야에서 창업 붐이 일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IT 허브가 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로 많은 국민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환경이 갖춰졌다. 오토바이로 음식 등 각종 물건을 배달해주는 스마트폰 앱인 '헬로 푸드(Hello food)'가 르완다 청년들에 의해 개발돼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학살의 나라'에서 20여 년 만에 '아프리카 신흥국' 된 르완다는?]
세계 각국의 원조와 투자도 몰리기 시작했다. 작년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궐로 외국인 직접 투자율이 이례적으로 12% 감소해 4억달러를 기록했지만, 올해 다시 빠른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3월 르완다의 국가 신용등급을 B에서 B+로 한 단계 상향했다.
카가메 대통령의 리더십도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종족 갈등을 극복하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 덕이다. 수시로 빗자루를 직접 들고 나와 거리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비즈니스맨처럼 해외를 돌아다니며 방문국의 중소기업 경영자까지 일일이 만나고 있다.
지난 23일 기자가 방문한 키갈리의 대통령궁은 시멘트로 지어진 단층 건물로 소박한 모습이었다. "한국은 우리에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일하면 된다는 희망적 케이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