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서울의 한 구청 여권민원과는 점심때가 훌쩍 지난 근무 시간인데도 창구 4곳 중 2곳이 비어 있었다. 대기 의자엔 민원인 10여명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여권민원과 정원은 26명이지만 현재 4명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다. 하루 방문 민원인이 400~500명에 달할 만큼 붐비는 곳이지만 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여권 발급 기일을 지키려면 신청 당일 서류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제도 밤 10시까지 일했다"며 "석 달 전 계약직 직원 1명을 채용했지만 여권 업무를 처리할 법적 권한이 없어서 단순 작업만 하고 있다"고 했다. 정원이 1200명인 이 구청에서 출산휴가·육아휴직 등으로 쉬고 있는 사람은 110명(9.2%)이나 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점점 활성화되면서 민원인들을 행정 일선에서 상대하는 전국 기초자치단체들이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서울시내 구청들의 경우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간 직원 비중이 전체 정원의 5% 수준인 60명 정도지만, 일부 구청에선 100명을 넘기도 한다. 3~5개 과(課)에 해당하는 인원이 늘 부족한 상태인 것이다. 구청 관계자들은 "저출산 시대이니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있지만 이젠 그로 인한 인력 공백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지방 중소 도시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북의 한 시(市)는 시청 공무원 정원이 900명 안팎인데 30여명이 출산휴가·육아휴직 중이다. 시 관계자는 "임시로 뽑은 대체 인력이 휴직한 직원만큼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결국 남은 직원들이 그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국 지자체의 육아휴직 신청자 수는 2006년 1826명에서 2010년 5497명, 작년엔 7939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작년 기준 지방직 공무원 정원 대비 육아휴직 비율은 4.3%로 중앙 부처 공무원 등 국가직(3.8%·교사 제외)보다 높다.

출산휴가·육아휴직으로 인한 행정력 공백 문제는 여성 공무원 증가 추세에 따라 점점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1997년 20.7%이던 지자체 여성 공무원 비율은 작년 32.5%까지 늘었다. 7~9급 공채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50%를 넘어선 지 오래이고, 일부 지자체에선 60%를 넘을 때도 있다. 대체 인력 확보가 안 되니 지자체 공무원 사이에선 "남자 공무원을 좀 더 뽑아주면 안 되느냐"는 불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자체들은 기간이 짧은 출산휴가 때문에 빈자리가 생기면 주변 직원들에게 업무를 대신하게 하고, 육아휴직으로 인한 빈자리는 3~6개월 단위로 일하는 임기제 공무원을 뽑아 쓰고 있지만 인력 보충 효과는 크지 않은 실정이다. 수도권 한 구청에서 일하는 20년차 공무원 김모(여·45)씨는 "대체 인력을 채용해도 정규 직원이 아니다 보니 내가 하던 일을 제대로 맡아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지자체 인사를 관리하는 행정자치부는 1년 이상 육아휴직 하는 공무원의 빈자리를 임기제가 아닌 공채 공무원으로 채워넣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공채 공무원 수를 늘릴 수는 없는 실정이어서 대체 인력풀(pool)을 실효성 있게 구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의 인력 운용 시스템을 좀 더 유연하게 개선해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을 해당 과에서만 감당하는 게 아니라 지자체 전체가 나눠 부담하는 식으로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공무원이 최소한 한 달 전에는 부처에 휴직 사실을 알리는 '사전 예고제'를 제대로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