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안압지 준설 공사 때는 발굴 인부들이 유물을 빼돌리는 일이 많았어요. 인부들이 점심 도시락에 기와 조각이나 토기를 숨겨 가서 경주 시내 골동상에 넘기는 일도 종종 있었지요."(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

"제가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현장 유물 감독을 맡았습니다. 인부들한테 '유물 나오면 신고해주세요' 했더니 어느 분이 '어이, 여기 유물 나왔네? 막걸리 값 줘야지 이걸 왜 공짜로 줘?' 하면서 제 앞에서 신라 토기를 깨버리더군요. 당장 윗선에 보고해서 준설이 중단되고 본격 발굴단이 조성됐죠."(고경희 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 모습

통일신라시대 궁중 연못인 경주 안압지 발굴 40주년을 맞아 당시 발굴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7일 오후 경주 보문단지 내 힐튼호텔에서 열린 '안압지 발굴조사, 역사의 그날' 좌담회.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안압지 조사단장), 당시 조사단원이었던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고수길 기호문화재연구원 이사장, 고경희 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비롯해 손원조 서라벌신문 대표, 최태환 당시 작업반장이 참석해 발굴 비화를 쏟아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안압지는 경주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74년 연못을 준설하는 과정에서 기와 등 유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1975년 본격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2년 2개월 동안 나무배, 금동여래입상, 14면체 주사위(주령구) 등 3만3000여 점이 출토됐다.

발굴에 얽힌 에피소드를 묻자 참석자들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당시 길이 6.2m에 이르는 통일신라 나무배(木船)를 옮기는 도중에 배가 두 동강이 났다. 최병현 교수가 "1500년 넘게 뻘 속에 묻혀 있었으니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은 스펀지 상태"라고 하자, 김동현 단장이 "수십명 인부가 달려들어 옮기는데 몇 사람이 힘을 안 썼는지 나무가 휘어서 가운데가 토막이 났다. 제가 그날 사표를 써서 문화재관리국장한테 보냈다"고 했다.

14면체 주사위가 출토돼 건조기에 넣고 말리다가 유물을 태운 일, 남근 모양의 목간이 출토되자 서로 만져보겠다고 달려든 얘기 등이 차례차례 공개됐다.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금동불입상 출토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금동판보살좌상 수습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 당시 발견된 나무배(목선)를 끌어올리는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 당시 금동여래입상 출토 상태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 당시 귀면와 출토 모습
40년 전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 당시 목제 주사위(주령구) 출토 모습
경주 안압지
경주 안압지 현재 모습

◇"집 두 채 값 금일봉 받았다"

1975년 7월 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영애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발굴 현장을 방문했던 일화도 나왔다. 김동현 단장은 "대통령이 조사단원들과 한 사람씩 악수를 한 후 뒤를 돌아보니 차지철 경호실장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200만원이라는 엄청난 액수가 들어 있더라"며 "당시 집 두 채 값이었다"고 회고했다. "나중에는 조사단원 모두에게 각각 2만~3만원씩 1년 6개월 동안 매달 금일봉을 주셨어요. 그거 모아서 단원들이 집도 사고 저금도 했지요. 이런 얘기 처음 합니다(웃음)."

이날 원로들은 현재 한창 진행 중인 신라왕경유적 발굴에 대해 "제발 천천히, 서두르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발굴도 결국 유적 파괴 아닙니까. 유적은 한 번 부서지면 그만입니다. 차분히 조사하고 정비할 수 있게 학계에 맡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