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여야(與野) 대표·원내대표는 22일 1시간 48분간의 청와대 회동에서 약 40분간 국사 교과서 국정화(國定化) 문제만 두고 논쟁을 벌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구체적 사례까지 들며 정면 충돌했고, 박 대통령도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국정화 중단" "야당도 참여하라"

회동에서는 박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자마자 문 대표가 바로 교과서 문제를 꺼냈다. 문 대표는 "국민들은 역사 국정 교과서를 친일미화, 독재미화 교과서라고 생각한다"며 "국정화를 중단하고 경제와 민생을 돌봐달라"고 했다. 이어 "세계적으로도 정상적으로 발전된 나라에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하지 않는다"며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왜 대통령께서 국정화에 매달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 나머지 참석자들의 모두발언이 끝난 직후 교과서 논쟁은 바로 불이 붙었다. 김무성 대표는 문 대표의 "친일·독재 미화" 주장에 대해 "아직 집필진이 구성되지도 않은 교과서에 대해 친일·독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지금까지 많이 참아왔는데 정말 그런 주장은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박 대통령도 "집필도 안 했는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느냐"고 했다. 그러나 문 대표는 교학사 교과서 등의 사례를 들며 "일본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해서 기술되지 않았느냐"며 "교학사 교과서에는 '위안부들이 일본군을 따라다녔다'는 등의 내용도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김 대표는 "교학사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아니고 검인정 교과서 아니냐"며 "국사편찬위를 중심으로 집필진을 구성하기로 했으니 야당도 걱정이 되면 좋은 집필진을 구성하는 데 참여하라"고 했다.

집필진 성향 두고 논쟁

박 대통령은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이고 북한이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서술돼 있다"며 "이렇게 패배주의로 가르쳐서 되겠나"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줘야 통일시대를 대비한 미래세대를 올바르게 키울 수 있다. 국정화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박근혜(오른쪽)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野 이종걸 "역사 교과서 괴담 진원지는 박근혜 대통령" ]

양측은 검인정 교과서 집필진 구성을 두고도 대립했다. 박 대통령은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의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진 특정인맥으로 연결돼 7종의 검정 역사교과서를 돌려 막기로 쓰고 있다"며 "결국은 하나의 좌편향 교과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특정인맥'과 관련, 전교조와 민족문제연구소 출신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도 "(역사 교과서 집필진의) 90% 이상이 좌파 학자들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역사학자 2000여 명이 국정 교과서를 집필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역사학자들이 모두 좌파 이념에 물든 학자들이라는 말이냐"라며 "검인정 교과서도 대한민국 역사를 자랑스러운 역사로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고 했다. 또 문 대표가 "대표적인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도 검인정으로 가는 추세"라고 말하자, 김 대표는 "이 세상에 분단 국가가 우리밖에 더 있느냐. 분단국가에서는 국정 교과서가 유일한 방안"이라고 했다.

金 "온통 빨간색", 文 "언제 때 교과서 말하나"

교과서 내용에 대한 공방도 벌어졌다. 김 대표는 "왜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워야 하느냐. 주체사상 탑에 화강석이 2만5000개, 계단이 70개라는 것을 왜 알아야 하느냐"며 "교사용 지도서는 더 심해서 온통 빨간색"이라고 했다. 문 대표는 "현 교과서에는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 없다. 언제 때 교과서를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맞섰다. 김 대표가 "일부 교과서에는 6·25전쟁이 남북 모두에게 책임 있는 것으로 적혀 있다"고 하자 문 대표는 "두 분(박 대통령과 김 대표)이 교과서를 안 읽어봤다. 모두 6·25는 남침이라고 기술했다"고 했다.

문 대표는 회동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국정화 중단 요구에 대통령은 답이 없었다"며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역사인식은 상식과 너무나 동떨어져 거대한 절벽을 만난 것 같은 암담함을 느꼈다"고 했다. 김 대표도 "같은 교과서를 놓고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저도 비슷한 걸 느꼈다"며 "하지만 우린 여당이기 때문에 이걸 풀어야 될 책임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