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원내대표 등 5명이 22일 청와대에서 만났다. 2시간 가까운 회담에선 많은 국정 현안에 대한 대화가 이뤄졌다.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가 만난 것은 올 3월에 이어 7개월 만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회담 성과는 미약했고 넘을 수 없는 이견(異見)만 확인하고 끝났다. 의견 접근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내년도 예산안을 법정(法定) 시한 내에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고, 한·중 FTA 등 이미 타결된 여러 FTA 비준안을 처리하는 데 속도를 내자는 정도였다. 나머지 분야에선 거칠게 다퉜다고 할 만한 말이 오가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정말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주 의제(議題)는 예상대로 국정교과서 문제였다. 1시간 48분 중 30분 이상 논쟁이 벌어졌다. 대통령은 교과서 갈등이 정치 문제로 변질되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야당 측이 국정교과서가 친일(親日)·독재(獨裁) 미화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하자 김무성 대표가 화를 내는 상황까지 있었다 한다.

정부가 이미 국정화 방침을 고시(告示)까지 했고 야당은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한 상황에서 접점(接點)을 찾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정화만이 검정교과서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지금의 검정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양측이 조금씩 양보해 검정 제도를 강화하거나 국정과 검정을 경쟁시키는 대안(代案)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 최고 정치 지도자들은 일방적 자기 주장을 상대방에게 통보하는 식으로 대화를 끝내고 말았다. 분열된 국론(國論)을 정치가 정리해주지 못한 것이다.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 사업, 일 자위대의 유사시 한반도 진출 문제, 여야 대표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합의 등 여러 현안도 한 치의 의견 접근 없이 끝났다.

이번 회담은 원래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 결과를 설명하겠다고 제안하자 야당이 다른 현안들까지 논의하자고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 국민들은 국정교과서 문제로 여야가 충돌하면서도 서로의 주장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노력은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은 이런 최소한의 기대마저 완전히 저버렸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는 회담 후 "거대한 절벽을 느꼈다" "참담하다"는 말을 쏟아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비슷하게 느꼈다"고 했고, 청와대에서도 "서로 할 말 하고 끝났다"는 말이 나왔다. 회담이 끝나자마자 서로에게 손가락질부터 하는 것은 회담을 지켜본 국민에게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태도이다.

박 대통령 집권 이후 여야는 싸움을 거듭하며 정치 불신을 키워왔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회동도 문제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불신과 갈등을 격화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 리 없다. 노동 개혁 등 경제 현안 처리도 원만하게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부정적인 파장(波長)이다. 이럴 거였으면 도대체 왜 만났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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