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자들, 정말 살기 힘든 걸까?
'남자의 하소연'이 방송계 새로운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SBS 웃찾사의 인기 코너 '남자끼리'를 비롯해 OtvN의 '어쩌다 어른', XTM의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수방사)'가 대표적이다. 자칭 "약자"라 우기는 남자들이 힘을 합쳐 '된장녀' 여자친구를 골탕 먹이고(남자끼리), 평소 아내 눈치만 보며 살던 남편은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거실에 바닷물 2t을 채워 꿈에도 그리던 '낚시터'를 만든다(수방사). 매사에 심각한 배우 김상중은 "남자가 슬픈 게 뭐냐면 외로워도 외롭단 말을 하면 안 되는 거다"라는 말에 눈시울을 붉힌다(어쩌다 어른).
SBS 웃찾사 '남자끼리' 코너는 막무가내 여자친구 앞에서 을(乙)로 쩔쩔매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주변 남자들이 힘을 합친다는 콘셉트다. 여자가 값비싼 바닷가재를 먹고 싶다고 남자친구를 조르면 음식점 주인이 "저건 내 애완동물이라 못 판다"며 막아선다. 떡볶이 먹던 여자가 "내 친구는 지금 (스테이크집에서) '칼질' 한다던데"라고 남친을 구박하면 떡볶이집 주인이 가래떡에 떡볶이 소스를 발라 건네며 "칼질해 드세요"라며 능청을 떤다. "요즘 시대에 남자끼리 돕고 살아야죠!"라고 외치는 이 코너는 방송 3회 만에 웃찾사 대표 브랜드가 됐다. 지난 18일 방송에서는 웃찾사 전체 시청률 7.7%(닐슨코리아)를 훌쩍 뛰어넘는 10.3%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달 첫 방송을 시작한 OtvN '어쩌다 어른'은 휴일이면 거실에서 TV 리모컨을 손에 들고 곯아떨어지는 이 시대 가장의 민낯을 보여준다. 안방은 아내 차지이고, 제 방에 틀어박힌 아이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려면 거실에 나와 있어야 하는 서글픔이 묻어난다. 카메라가 설치된 방에 혼자 들어가 속내를 털어놓는 '한 평의 방'에서는 "돈이 필요할 때만 딸들이 나한테 이야기한다" "어른이 되니 아버지의 마음을 알겠다"는 중년 남성들 고백이 이어진다.
'수방사'는 "안방, 아이 방, 옷 방은 있어도 내 방은 없다"는 아버지들의 하소연으로 시작한다.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의뢰인을 위해 집 안에 낚시터, 캠핑장 등을 만들어 주는 게 이 프로의 콘셉트.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벌이는 '쿠데타'다. 지난달 임시 편성됐던 이 방송은 타깃 연령층(25~44세 남성) 시청률이 1주 만에 10배로 뛰어 11월부터 정규 편성됐다.
남녀 서로 혐오하는 시대라지만, 여자들 반응도 나쁘지 않다. 회사원 김모(28)씨는 "'남자끼리'를 보면 평소 남자친구에게 내가 이런저런 요구만 한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며 "과도한 된장녀 묘사가 불편할 때도 있지만 많이 웃게 된다"고 했다. '어쩌다 어른'을 연출한 정민식 PD는 "방송 이후 아내가 자기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주변 남성들에게서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자를 약자로 묘사해 웃음과 공감을 얻는 모습은 우리 사회 문화 코드가 변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니 남녀 모두 공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남자들이 느끼는 좌절감을 토로하니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면서, "다만 여자를 남자 돈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사람으로만 묘사해 여성 혐오를 이끌어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