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는 지난 16일 사기 대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모뉴엘 박홍석 대표에게 징역 23년에 추징금 361억원을 선고했다. 징역 23년은 국내 경제사범에게 선고된 형량 중 가장 무거운 것이다. 20조원대 분식 회계를 주도한 김우중 전 대우 회장에게 2006년 1심 법원이 징역 10년을 선고한 것과 비교하면 그 무게를 알 수 있다.

한때 '벤처 신화'로 불린 박씨는 제품 가격을 부풀리거나 허위 수출 서류를 만들어 10개 시중은행에서 3조4000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기관 피해액만 54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무역보험공사가 보증한 3000여억원은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할 판이다. 재판부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횡령·주가조작 같은 경제 범죄에 관대한 처벌을 해온 우리 사법부 관행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동안 우리 법원은 뇌물·강력범죄와는 달리 심각한 경제 범죄를 저질러도 징역 15년 이상 선고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 재산에 피해를 준 범죄를 도덕성이나 신체를 훼손한 것보다 죄질이 가볍다고 본 것이다.

이래선 지능적인 경제 범죄를 뿌리 뽑을 수 없다. 징역 몇 년 살고 나서 숨겨둔 돈으로 평생 떵떵거리며 즐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면 경제 범죄 유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남의 재산 가로채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 평생 감옥에서 썩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해야 한다. 모뉴엘 판결이 그 시작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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