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7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미사일과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두 정상은 이날 발표한 북한에 관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 등으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력 경고하고, 북핵 문제를 최고의 시급성과 의지를 갖고 다뤄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한·미 간 고위급 전략 협의를 강화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한·미 정상 간에 북한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공동성명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2년 북한의 '2·29 핵 합의' 파기 이후 '전략적 인내'로 들어갔다. 자연스레 북핵은 이란 핵과 이슬람 무장 단체 IS 문제 등에 밀려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북핵은 무시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북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핵무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양 정상이 이례적으로 대북 공동성명을 낸 것은 북한과 국제사회에 이런 의지를 보여주려는 뜻일 것이다. 임기 말인 오바마 대통령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핵의 돌파구를 열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6자회담 등 극적인 상황 변화에도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이번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에 적극 나서달라는 우리의 요청을 오바마 대통령이 받아들여 나온 것이라고 한다. 특히 통일 문제에까지 전략적 공조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한·미 동맹에서 또 하나의 진전이다. 양국이 통일에 대한 전략적 판단에 틈이 없도록 관리하는 것은 향후 동북아 정세에 중요한 주춧돌을 놓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두 나라가 사이버, 우주, 국제 보건 등 새로운 영역(뉴 프런티어)으로 협력 관계를 넓히기로 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양 측은 첨단 산업 분야 등에서 24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양국 간 경제동맹도 강화하기로 했다. 또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문제에 대해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주목받은 것은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지난 9월 중국의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뒤라는 시점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미국 조야(朝野)에 무시 못 할 정도로 퍼져 있는 '한·중 밀착' 소문은 박 대통령이 중국 열병식에 참석하면서 더 힘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자 박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정"과 "한·미 동맹의 역동적 진화"를 강조했다. 또 아베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할 가능성을 밝히면서 미국이 바라는 한·일 관계 개선 메시지도 던졌다.

미국 정부는 박 대통령에 대한 '이례적 환영 의전'을 부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국 안보 방위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며 “한미관계에 틈은 전혀 없고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했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한·중 관계 때문에 한·미 관계에 드리워졌던 미묘한 그림자가 부분적으로 가시는 듯 보인다.

지금 세계는 미·중 두 나라가 주도하는 신(新)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 있다.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듯한 상황도 그 한 부분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통일은 미국과 중국 어느 한 나라를 배척하면서 이뤄질 수 없다. 그러나 그 어떤 전략도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중국 아니라 그 어떤 나라도 당분간 미국을 대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만큼 우리와 전략적 이해를 같이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한국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을 미국도 원한다”며 “중국이 함께 협력해서 북한에 압력 가하길 바란다”고 했다. 백악관은 "한·중 관계와 한·미 관계는 제로섬이 아니다"고 했다. 우리가 중국과 협력하는 만큼 미국과 관계가 손상되는 구조는 아니라는 얘기다. 옳은 말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다만 국가 간 관계 역시 공식적 협정문 못지않게 많은 교감(交感)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 교감 수준에서 한·미 동맹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냉철하고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반도가 세계 질서 변환의 현장이 된 지금, 그런 안목과 감각이 더욱 절실하다. '한·미'와 '한·중'을 제로섬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는 결국 우리 역량에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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