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15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다. 당초 예정대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國定化)를 당의 공식 입장으로 결정하고 환영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그러나 이 자리엔 전체 의원의 절반가량이 참석하지 않았다. 토론다운 토론은 없었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나와 몇 마디 한 게 전부였다. 현행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만 꼭 국정화만이 해결책이냐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을 텐데도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이날 전국에 내걸었던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도 하루 만에 철거했다.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결과다. 얼마나 준비 없이 이 일을 시작했는지를 자인(自認)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14일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에 참석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국정·검정(檢定) 논란과는 직접 관련도 없다. 그런데도 문 대표가 이 자리에 간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친일(親日)'이라는 색깔을 씌우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 역시 역사 교과서는 뒷전이고 정치적 계산만 한 결과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온 사회를 '이념 전쟁' '진영 싸움'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치권, 학계, 교육계, 시민단체들이 국정이냐 검정이냐를 놓고 힘겨루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교과서 개편을 통해 잘못된 역사 교육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이냐 하는 목표는 실종됐다. 정부와 여당은 좋은 교과서 만드는 길이 왜 꼭 국정화뿐인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한 채 '국정화 강행'만을 외치고 있다. 야당은 아직 집필도 시작하지 않은 교과서를 놓고 '친일(親日)·유신 옹호 교과서'가 될 것이라며 무책임하게 선동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각 대학 역사학과 교수들은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성명을 잇따라 내고 있다. 대학별 단체행동을 통해 이탈자를 막으려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지식인은 개별적으로 자유로워야 할 존재들이다. 집필 제의가 들어오면 각자 입장과 신념에 따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면 그만이지 반드시 집단으로 의견을 공표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교수들의 집단행동은 지식인 사회의 자유롭고 다양한 논의를 가로막을 수 있다.

국정화는 입법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교과서를 단일화하겠다고 밀어붙이면 막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국민이 국정화에 찬반 의사 표시를 할 길이 영영 막힌 건 아니다. 당장 집필진이 공개되면 적정성 여부가 도마에 오를 것이다. 다수가 국정화에 반대하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무리하게 추진하면 내년 4월 총선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내년 말쯤 국정교과서 초안이 공개되면 국민은 그 내용을 보고 또 한 번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 계획대로 2017년 국정교과서가 교실에 배포되더라도 그해 말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하기 힘들다.

국정화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대한민국이 고난 속에서 이룬 자랑스러운 성취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역사를 젊은이들에게 올바로 가르쳐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게 역사 교육의 목표다. 이 목표를 위해 정치인과 학자와 교육자는 역사 교육을 이념 전쟁의 늪에서 구해내야 한다. 국정·검인정 싸움을 넘어 오로지 바람직한 역사 교육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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