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딸 아민이를 키우는 김종대(영화제작자·42)·권희라(인테리어 디자이너·37) 부부는 매일 아침 3층 안방에서 1층 사무실로 출근한다. 출근길엔 시부모 댁에 들려 인사를 하고 아민이를 맡긴다. 부모님이 사는 곳이 바로 2층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민이가 유치원을 다녀오면 엄마와 아빠가 일하고 있는 1층 사무실의 뒷마당을 찾아 그네를 타거나 벽에 그림을 그리며 논다. 두 부부가 숨가쁘게 일을 하다가 바깥 공기를 쐬며 휴식을 취하고 틈틈이 아이와 놀아줄 수 있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뒷마당에서 그릴을 꺼내 고기를 구워먹고 캠핑용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김씨는 “아이가 크면서 뛰어 놀 공간이 필요하니 마당이나 옥상이 있는 곳에 살고 싶었다”며 “애 키우는 부부들과 놀려면 키즈카페 같은 곳을 가야 하는데 우리는 사무실 뒷마당에 손님들, 아이들 다 데려와 논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김종대·권희라 건축주가 용산구 후암동에 지은 집 ‘남산몽블랑’은 가파른 땅 위에 서있다. 집 앞에서 보면 그냥 1층이지만 집 뒤쪽은 밖에서 보면 땅에 묻힌 반지하처럼 보인다. 집 뒤쪽으로 들어가보면 작은 뒷마당이 있다. 뒷마당은 옆 건물 벽들에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이다. 옆 건물 시멘트 벽이 뒷마당의 담 역할을 한다. 이 벽은 아민이의 커다란 도화지다. 아이가 그리고 싶은 세상을 벽에 그린다. 부부는 뒷마당 바닥에 나무를 깔고 정원을 꾸미고 ‘파티오(patio)’라 부른다. 주로 집의 뒷부분에 붙어 있는 테라스란 의미다. 인테리어와 공간 디자인을 10년간 해온 권씨는 “경사 진 대지와 옆집과 경계를 이루는 벽을 이용해 덤으로 얻은 반(半)외부공간”이라고 말했다.

김·권 건축주 부부는 지난해 남산타워가 코 앞에 보이는 후암동의 경사진 골목에 47년된 단층 노후 주택을 발견했다. 아파트보다 빌라, 주택을 선호하는 남편 김씨, 그리고 10여년간 다른 사람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하던 아내 권씨는 후암동의 고즈넉함에 반해 이곳에 ‘우리 집’을 짓기로 했다.

남산몽블랑 Before(위)&after(아래)

후암동 주택가 시세는 위치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약 2000~2500만원 수준에 형성되어 있다. 건축주 부부는 30여평 대지를 매입한 뒤 원래 있던 노후한 한옥을 철거하고 8개월만에 건축 면적 19평(64.9㎡),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건물을 만들었다. 지하 1층(9평)은 사무실로 임대를 주고, 1층 사무실(16평)은 뒷마당을 포함해 부부의 업무 공간으로 꾸몄다. 2층(19평)은 시부모 댁, 3층(19평)은 건축주 부부의 주방, 침실 그리고 아민이의 놀이방이 들어간다. 다락방 개념의 4층(9평)에는 옥상 테라스를 마련했다. 부지 매입비를 제외한 공사비는 약 3억2000만원이 들었다. 건축·인테리어는 인테리어 회사 발포도건의 대표인 아내 권씨가 맡았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남산몽블랑은 현관이 2개다. 정면 현관은 1층 사무실로 통하고, 집의 측면에 있는 현관은 2~4층 거주 공간으로 통한다. 부부가 일을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과 가족이 먹고 자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분리했다.

측면 현관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면 문이 하나 더 나온다. 2층 부모님 댁이다. 신발을 벗지 않고 그대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이번엔 아민이네 집이 등장한다. 부모님 댁과 아민이네의 내부 구조는 거의 동일하다. 19평 정도면 벽을 세워 방을 2개 넣을만한 크기이지만, 방은 침실 1개만 뒀다. 이 침실도 옆으로 열고 닫는 미닫이문이라 낮에는 문을 활짝 젖혀놓으면 거실의 일부분이 된다. 침실과 거실을 구분하지 않고 널찍하게 한 공간으로 쓴다. 권씨는 “작은 집일수록 안방, 작은방, 서재, 이런 식으로 공간을 나누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권씨는 외관은 단순하고 저렴하게 마무리하고 천장 마감도 거의 손을 대지 않는 대신, 사람의 몸과 손이 많이 닿는 곳에는 좋은 재료를 가져다가 썼다. 권씨는 “예쁘거나 아기자기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오래 가고 몇 년이 지나도 다시 손보지 않아도 되는 좋은 재료, 내구성이 뛰어난 마감재를 쓰는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마루는 원목으로 깔았고, 주방 조리대 상판은 발품을 팔아 품질이 좋으면서도 인조 대리석보다 더 저렴한 천연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아민이의 놀이방은 욕실 위에 지었다. 욕실 윗부분 천장이 높아 노는 공간을 활용한 것이다. 벽에 사다리를 박아, 아이가 사다리를 타고 놀이방으로 올라갈 수 있다. 놀이방과 천장 간의 층고는 1.4m 정도로 낮아 어른은 허리를 숙여야 하지만, 아이들에겐 신나는 공간이다. 거실에는 가구를 최대한 줄이고 수납을 늘리기 위해 벽을 따라 붙박이 장을 넣었다. 에어컨은 일년 내내 거실 한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보기 싫어, 특수 제작한 붙박이 장 안에 넣어버렸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주택 모습

이 집의 또 다른 ‘핫 플레이스’는 4층과 옥상이다. 4층은 남산몽블랑에서 ‘정수리’ 역할을 한다. 몽블랑은 원래 눈 덮인 산을 뜻한다. 눈 덮인 산처럼 하얗고 삼각형 모양인데 꼭대기 부분만 장식이 달린 디저트인 몽블랑 케이크에서 이름을 따왔다. 외벽이 흰색이고 위로 가면 갈수록 좁아지다가 4층에 이르면 뾰족하게 설계했다. 4층에서 문을 열고 간이 계단을 오르면 옥상 테라스가 나온다. 이 옥상에서 밤 공기를 마시며 서울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바로 앞에 남산타워도 보인다.

유리창은 벽을 따라 비스듬하게 대각선으로 누워있다. 건물이 뾰족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유리창을 일반 아파트처럼 수직으로 달 때보다, 비스듬히 설치할 때 채광량이 훨씬 많다. 덕분에 4층으로 올라가면 온실에 들어온 것 마냥 후끈후끈 열이 난다. 올 겨울 이 가족은 난방을 때는 대신 4층 ‘온실’ 다락방에서 따뜻하게 지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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