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서울 관악구에 사는 하모(32)씨 원룸으로 헤어진 지 석 달 된 남자 친구 김모(34)씨가 찾아왔다. 김씨는 문 앞에서 이름을 부르며 "문 열어달라"고 소리쳤다. "동네 창피하다"며 방 안으로 들인 게 화근이었다. 김씨는 "다시 만나기 싫다"는 하씨를 침대 위로 밀치곤 옷을 벗기려 했다. 비명을 지르자 멈추긴 했지만, 하마터면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하지만 하씨는 이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하씨는 "헤어진 데 대한 미안함이 남아 있었고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니어서…"라고 했다. 하씨는 옛 남자 친구가 집으로 또 찾아올까 봐 불안에 떨다가 결국 이사했다.

[애인 2시간 폭행 의전원생에 벌금형 논란]

[[대한민국, 女性이 위험하다] 어디도 누구도 안심 못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 폭력에 노출돼 있을까?

생각보다 많은 연인이 데이트 폭력에 노출돼 있다. '폭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신체적 폭력만 '데이트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때문에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그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전국 20~30대 미혼남녀 49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봤더니, 72.3%(355명)는 데이트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66.8%(328명)는 데이트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를 묻자 남성(158명)은 주로 '화났다는 것을 알려주려고'(44.9%) '무의식적으로 흥분해서'(36.7%)라고 답했고, 여성(170명)은 '상대가 잘못해서'(36.5%), '상대가 먼저 욕이나 폭력을 행사해서'(27.6%)라고 대답했다.
▶갈데까지 간 '데이트 폭력'…하루 평균 18명 폭력에 노출
▶미혼남녀 72.3%가 응답, "데이트 폭력 경험한 적 있다"

못난 사람만 데이트 폭력을 당한다? 스타들도 예외는 없다

sbs 매직아이 방송 캡처

"얼마나 못났으면 맞고 다니겠어?" "맞을 짓을 했겠지"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이다. 누구든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별 중의 별,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들도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였다.

가수 이효리도 한 방송에 나와 "데이트 폭력의 피해와 가해 경험 둘 다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휴대전화를 비일비재하게 던졌고, 사귀었던 남자친구 중 한 명은 꽃게를 그녀에게 던져 다리에 꽂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데이트 폭력은 혈기왕성한 젊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 중견탤런트는 술을 마시던 중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왜 커플링을 끼지 않았느냐"며 화를 내고 주먹을 휘둘러 여자친구를 때렸다. 당시 함께 술을 마시던 다른 여성이 그의 여자친구를 데리고 골목길로 피했지만, 그가 따라나가 발길질까지 했다고 한다. 
▶중견탤런트 최모씨, "왜 커플링 안끼나" 만취해 여친 폭행

죽음을 부르는 그 이름, 데이트 폭력

서로 사랑하던 두 사람이 어떻게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까? 폭력에 다른 이유는 없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가해자, 폭력이 무섭지만 그보다 더한 애인의 위협에 헤어지지 못하는 피해자가 있을 뿐이다.
한 20대 여성은 '다른 남자와 연락했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에게 수차례의 폭력과 감금까지 당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도 사귀던 중의 잦은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지만, 야산에까지 끌려가 폭행과 건전지를 삼키는 등의 신체적 고통을 받았다. (▶기사 더 보기)

데이트 폭력은 당사자 간의 폭행과 폭언 등에서 그치지 않는 예도 있다. 데이트 폭력은 상대방과 그 가족의 목숨까지 앗아갈 정도로 위험하다. 지난해엔 배관공으로 위장해 여자친구의 집을 찾아간 뒤, 그 부모를 살해한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딸과 헤어지라'는 여자친구 부모의 말에 앙심을 품고 계획적으로 저지른 살인이었다. 폭행당하는 딸을 위해 남자친구에게 찾아가 헤어지라고 한 부모의 죄가 무엇이었을까.
▶대구 살인사건, 여친과 헤어지란 말에 여친 부모 무참히 살해
▶檢, 같은 과 여자친구 살해 뒤 자살로 위장한 고대생에 무기징역 구형

피해자와 그 가족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데이트 폭력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법적인 제도화가 미흡하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다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처벌 수위가 낮아지는 예도 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던 20대는 올해 진행됐던 항소심에서도 원심과 같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상당수의 처벌은 생각보다 가볍다. 같은 과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자살로 위장한 고대생에게는 징역 15년이 선고됐을 뿐이다. 이 밖에도 폭행·감금 등의 데이트 폭력은 수개월에서 수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前 여자친구 부모 살해한 20대 항소심서도 '사형'
▶같은 과 여자친구 살해 뒤 자살로 위장한 고대생 징역 15년

숨고 피하기만 하면 끝 없다, 데이트 폭력 대처법

"헤어지면 죽이겠다" 협박하는 상대방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두렵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데이트 폭력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데이트 폭력을 겪고 있을 때의 대처법과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자료 출처: 안녕데이트공작소 http://sogoodbye.org/ )

▶폭력에 단호해라!  
상대의 폭력에 단호한 모습을 보여라. 상대가 용서와 화해를 구하고, 눈물을 보이며 설득하려 해도 흔들리지 말라.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라!  
가족, 동료, 친구, 선생님 등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라. 특히 성폭력상담소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기관에 상담을 받자. 지지체계는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하는데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다. 한편 주변 사람은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탓하지 말고, 믿고 지지하며 피해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 사건 해결의 중심이 피해자임을 잊으면 안 된다.
▶폭력의 흔적을 남겨라!  
상대방이 폭력(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을 행사한 날짜와 시간을 자세히 기록해 두고, 문자 메시지, 대화 녹음 등의 증거물도 남겨둬라. 신체적·성적인 폭력이 발생했다면 반드시 112에 신고하고, 신고하지 못한 경우에도 몸의 상처나 폭력의 흔적을 사진으로 찍어두고 병원에 꼭 다녀올 것. 분실의 위험을 대비해 증거물을 안전한 곳(속옷 등의 증거물은 코팅되지 않은 종이봉투)에 별도 보관하는 것이 좋다.
▶함께해라!  
폭력을 행한 상대방과 단 둘이 만나지 말자. 꼭 만나야만 한다면 안전하고 편안한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고,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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