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노벨 과학상, 그것 꼭 타야 하는 겁니까?"라고 묻는다면 "안 타도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 없다"가 정답이다. 한국인 한 명이 노벨 과학상을 탄다고 이미 노벨상 수상자를 수십, 수백 명 보유한 나라에서 우리 휴대폰이나 자동차가 더 잘 팔리지는 않을 것이다. 2000년 이후 노벨상에서 기염을 토하고 있는 일본의 기업 경쟁력은 지난 15년간 오히려 눈에 띄게 쇠퇴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노벨상 수상자를 낼 정도의 국가가 되는" 일은 그렇게 간단히 포기할 수 없다. 그 이유를 이 상의 성격을 통해 살펴보자. 첫째, 노벨 과학상은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분야를 묵묵히 개척한 외로운 선구자들에게 주는 상이다. 시류에 따라 나라 전체가 이리저리 쏠리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다. 간판과 눈치 보기와 효율성보다는 내실과 독립심과 창의성이 사회를 이끄는 가치가 되어야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사람들을 통해 노벨상의 씨가 영글어 갈 것이다. 남들이 애써 열어놓은 분야에 발 빠르게 뛰어들어 한국인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근면함으로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낸다고 해서 노벨상을 언젠가 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다수의 노벨상 수상 업적은 이런 학술지와는 거의 무관한 연구자들이 내기 때문이다.

둘째, 노벨 과학상은 기록경기에서처럼 최고 기록에 주는 상이 아니라 최초의 발견을 인정하는 상이다. 만약 휴대폰에 대해 노벨상을 준다면 삼성이나 애플이 아니라 40여년 전 처음 휴대폰의 원형을 만들었던 모토롤라나 심지어 그 회사에 영감을 주었지만 우리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작은 회사에서 타게 된다는 뜻이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도 명문대에서 수십억 연구비를 굴리면서 세계적 추세를 좇아가는 스타 과학자보다는, 이름 없는 지방대의 구석진 연구실에서 한 분야를 오랫동안 파고드는 무명 과학자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비록 소액이더라도 꾸준히 한우물을 팔 수 있는 연구비를 의욕과 역량이 넘치는 많은 무명 연구자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제공해야 한다.

셋째, 노벨상은 지난 100여년간 인류의 지적 자산을 공동으로 일구는 축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부강한 나라가 되어 UN 분담금을 많이 내고 평화유지군과 의료진을 파견하는 것도 한 국가가 인류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훌륭한 일들이다. 그러나 돈과 힘으로 안 되는 분야도 있다. 예술과 문화를 널리 향유하는 것과 지식의 지평을 열어가는 것은 인간의 가장 고유한 본성인 아름다움과 진리를 추구하는 영역이다. 상업 기술과 스포츠와 대중문화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라면 인류 지식의 경계를 넓혀가는 데에도 걸맞은 기여를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노벨상을 타는 것과 별개로 노벨상 수상자를 낼 정도의 국가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관심사는 한국인 중 누가 언제 노벨 과학상을 탈 것이냐가 아니라, 정부와 과학계가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교육과 연구의 틀을 바꾸고 저변을 확대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일반 대중도 4년마다 올림픽 금메달 따듯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종갓집 장맛이 익기를 기다리듯 관심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