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범죄와 악이 미국 월가를 지배했다. 당장의 결과에 눈이 멀어 도덕적 책임을 무시하고,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는 CEO가 많았다. 경제 위기 이후 기업 윤리에 대한 CEO의 관심이 증가했지만, 이는 도덕성을 요구하는 외부 압력에서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에 불과하다."

씨어도르 루스벨트 맬럭(Theodore Roosevelt Malloch·사진) 회장이 최근 미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수준을 이렇게 평가했다. 맬럭 회장은 다국적기업의 비즈니스·네트워크·리더십 전략을 컨설팅하는 미국 루스벨트 그룹의 CEO로, 23개 산업군별 7500개 기업 CEO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의 집행위원, 미국 국무부와 상원, 템플턴 재단 위원으로 일했고, 예일대를 거쳐 현재 옥스퍼드 대학 교수로서, 책임 있는 리더십·윤리 경영·기업 지배 구조를 가르치고 있다. 20년 넘게 CSR을 연구한 전문가이자, 윤리 경영과 관련된 저서를 15권 출간하는 등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하다. 맬럭 회장은 오는 11월 4일 롯데그룹·ARCON이 공동 주최하고 '롯데면세점'이 후원하는 '소셜 임팩트 콘퍼런스' 참석을 앞두고 이메일 인터뷰에 응했다.

―최근 폴크스바겐 사태로 기업 윤리가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의가 활발하다. 이러한 윤리 경영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의 유명 증권 중개회사 MF 글로벌, 대형 금융회사 베어 스턴스, 리먼 브라더스의 CEO들은 투자 심리를 악용해 위험성을 숨기는 방법으로 상품을 속여 팔았다. 투자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한 기업도 있다. 비윤리적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과 시민들의 비판 의식이 부족했던 결과다. 다행히 최근 소비자들이 공정 무역·노동자 인권·친환경 제조 과정 등 기업의 도덕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화가 SNS를 통해 전 세계적 트렌드가 된다면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윤리 경영과 사회적 가치에 좀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윤리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수익성과 소비자의 신뢰를 동시에 높인 기업 사례가 있는가.

"세계 최고급 호텔을 경영하는 포시즌스(Four seasons) 그룹의 경영 철학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신뢰하라'다. 샤프(Sharp) 회장은 1961년 회사 설립 때부터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 원칙을 정했다. 직원들에게 회사의 핵심 철학을 오랜 시간 교육한다. 실제로 포시즌스 호텔 '도어맨'은 고객의 이름을 기억하고, 웨이터는 손님이 선호하는 음식을 기억하며, 청소 스태프는 개개인이 선호하는 베개와 꽃의 색까지 기억한다. 직원들의 불만을 고객의 항의와 동일하게 존중하고, 수익이 많든 적든 직원 모두에게 회사의 재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게다가 30년 넘게 항암 연구를 지원하면서, 기금 마련을 위한 '테리 폭스 자선 마라톤(Terry Fox Run)'도 31회째 진행하고 있다. 처음엔 일회성 이벤트였지만, 행사 2년 차에 30만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해 320만달러를 모았고, 현재 전 세계 50개국에서 열릴 정도로 확대됐다."

―한국은 CEO의 관심과 열정에 따라 CSR이 좌우된다. CEO의 윤리 경영 마인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다보스포럼 리더 150명을 대상으로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중 75%가 'CEO의 역할이 변화했다'고 답했고, '주주 및 대중의 기대치만큼 책임 경영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CEO들은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과 도덕성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는 선택을 요구받는다고 했다. CEO가 되자마자 윤리 경영 능력을 가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갈고닦고 학습해야 한다. 실제로 인터뷰한 리더 150명 중 대다수가 '섬김형 리더(Sevant Leaders)'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상사가 아닌 조언자, 동료로서 기업의 조직 문화를 이끌어가더라. 글로벌 사회에 걸맞는 신뢰 관계, 시민운동 확산, 지역 네트워킹이 기업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 층도 확장시키고 있다. 이제 CEO들은 리더십, 소통, 윤리 경영 전략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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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선 오너의 횡령, 형제 간 다툼, 직원 하대 등으로 조직 거버넌스와 리더십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거버넌스와 리더십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지난 몇 년간, 윤리 경영에 대한 법안 규제 및 정책 발표가 쏟아졌다. 윤리적인 기업 지배 구조에 대한 기준도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나는 저서 '도덕적인 비즈니스(Doing Virtuous Business)'를 통해 윤리 경영으로 뛰어난 60개 기업의 리더십을 분석했는데, 리더에겐 리더십·정의·감사·연민·용서·관용·인내·신뢰·끈기·용기·훈육·존경·정직·인간성 등 14가지 경제적 덕목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국적 전자제품 업체인 커민스(Cummins)의 CEO 클레시 커민스(Clessie Cummins)는 '우리는 도덕적으로 옳은 일만 한다'는 신념 아래 회사를 이끌었다. 1919년 자동차 산업이 생소할 무렵 디젤엔진을 이용한 자동차로 큰 성공을 거뒀고, 그의 뒤를 이은 CEO 밀러(J.Irwin Miller)는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인종차별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밀러는 남아프리카의 백인우월주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커민스의 남아프리카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월마트 CEO 샘 월턴(Sam Walton)은 은퇴 후에도 리더십&윤리센터를 설립해 미래 인재들에게 가치와 책임 경영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CSR이 중요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업의 목적은 수익 창출일 뿐이라고 말하는 기업이 많다. '왜 기업에게 CSR이란 책임까지 지우느냐'는 반응이다.

"최근 나 역시 비슷한 질문을 기업으로부터 받는다. 기업들은 CSR에 대해 크게 3가지로 반응한다. CSR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얼리 어댑터'형 기업, 정부 규제나 소비자 요구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CSR을 시작하는 기업, CSR의 효과를 믿지 않거나 경제적 이익만 고려해 CSR을 하지 않는 기업 등이다. 유엔 글로벌 콤팩트의 사례 분석이나 ESG(환경·사회·지배 구조) 평가 분석 리포트를 보면 다국적기업이 CSR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이에 따라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 도덕을 무시하는 행위는 더 이상 용인돼선 안 된다. 개인, 기업, 사회 전체가 윤리적 가치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부패하고 몰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