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중국 닝샤 후이족 자치구)=정지섭 기자

높이 108m의 전망대 겸 박물관인 황허러우(黃河樓)에 오르니 흙빛의 황하가 굽이치는 들판 곳곳에 이슬람을 상징하는 크고 작은 초승달 모양의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슬람 사원의 둥근 지붕에 꽂힌 작은 초승달부터 3층 건물 높이와 맞먹는 거대한 철골 초승달까지 가지각색이다.

지난달 말 중국 닝샤(寧夏) 후이(回)족 자치구 우중(吳忠)시를 찾았다. 대대로 이슬람교를 믿어온 후이족은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둘째로 인구(1058만명)가 많다. 이들이 살고 있는 닝샤 자치구는 황하문명의 발원지인 동시에 1500년 가까이 한족과 이슬람 문화가 교류하는 곳이다. 그동안 중국의 성장 동력이 동쪽에 집중되면서 소외되어 있던 이곳이 요즘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중국은 2013년 아시아·유럽·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육·해상 교역로를 닦아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신실크로드)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이곳을 시진(西進)의 전초기지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거리 풍경이 바뀔 정도로 각종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먼지만 휘날리던 벌판이 16차선 바둑판 가로가 깔린 신도시로 탈바꿈했다. 낡은 이슬람 사원들은 말끔하게 새 단장을 하고, 중국어와 영어뿐이던 가로 표지판에 아랍어가 등장했다.

닝샤 천지개벽의 랜드마크는 2년 전 우중시 도심에 건립된 컨벤션센터인 이슬람문화센터. 기와를 올린 지붕에 초승달 모양의 장식물을 설치하는 등 중국과 이슬람 스타일을 혼합시킨 '퓨전 건축물'이다. 이곳에서 최근 '중국아랍국가박람회' '일대일로를 위한 할랄산업포럼' '중국 회상(回商)대회' 등 일대일로 정책 관련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지난달 중국 닝샤 후이족자치구 우중시 이슬람문화센터에서 열린‘할랄 상품 박람회’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후이족들. 이슬람교를 믿는 닝샤의 후이족들은 전통모자 등으로 자신들의 민족·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 보일 뿐 자신들을 중국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닝샤는 중국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달 8일 이곳에서 열린 할랄산업포럼에서 중국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 구슈롄(顧秀蓮) 전 부주석은 "일대일로의 길목에는 이슬람 국가 17개가 있다"며 "닝샤가(중국이) 이슬람 국가로 뻗어나가는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중시는 2013년 3월 할랄식품 등을 주로 만드는 40여 개 기업으로 구성된 바오디(寶迪) 이슬람산업원을 발진시키는 등 본격적으로 경제 개발의 시동을 걸었다. 하늘길을 여는 인촨(銀川)의 허둥(河東)공항은 증축 공사에 들어갔고, 시안(西安)·우한(武漢) 등 인근 대도시를 연결하는 도로 공사도 한창이다. 주중 팔레스타인 대사관의 암자드 2등 서기관은 "중국의 자본과 산업 기술을 원동력으로 삼아 함께 경제 번영을 누리자는 제안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중동·이슬람권 국가가 과연 있겠느냐"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중국이 이곳을 이슬람 풍으로 꾸미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남아·중앙아시아·중동으로 뻗어가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절대다수인 이슬람과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 내 소수파인 무슬림의 신앙과 전통을 존중하면서 경제개발도 함께 이룰 수 있는 거점(據點)이 필요했다. 애초 이슬람 소수민족 자치구인 위구르족의 신장(新疆)자치구와 후이족의 닝샤가 후보로 떠올랐다.

신장자치구는 인종·언어적으로 이질적이다. 또 위구르족의 일부 분리 독립주의자들이 테러와 폭동을 벌였다. 이에 대한 공안 당국의 감시와 진압이 반복되면서 중국과 이슬람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닝샤의 후이족은 다르다. 한족과 페르시아·아랍쪽 등의 혼혈인인 후이족은 일부 중장년층이 연보랏빛 전통 모자를 쓰는 정도로 민족·종교 정체성을 드러낼 뿐 중국 사회에 완벽히 동화돼 있다. 무슬림이지만 금식, 성지 순례 등 무슬림 풍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식도 높지 않다. 그래서 "사회주의가 통제하는 중국식 종교 정책이 가장 성공한 곳"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후이족 농민 왕쟝링(50)·마흥샤(48)씨 부부는 "먼지만 흩날리던 못사는 곳이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이 놀랍고 벅차다"고 했다.

현대 도시로 변모하는 우중시 곳곳에는 '우중고성청진대사(吳忠古城淸眞大寺)' 등 모스크가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이 모스크에는 거대한 황금빛 지붕 위로 중국 오성홍기가 내걸린 모습이 보인다. 모스크에서 만난 후이족 무슬림 왕즈풍(30)씨는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로 "우리는 알라가 전하는 진리를 믿고 따르면서도 사회주의가 만들어내는 화평한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