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성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은 1958년 조류학자 친구로부터 'DDT로 새들이 죽어간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DDT는 당시 세계보건기구가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권장할 만큼 완벽한 살충제로 인정받고 있었다. 개발자는 노벨상도 받았다. 편지를 읽은 카슨은 워싱턴 도서관에 틀어박혀 자료를 뒤졌다. 폐렴, 악성종양, 십이지장궤양으로 고통받던 때였다.

▶4년 후 살충제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논픽션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출간 직후 맹반발에 부딪혔다. 살충제 덕분에 풍작을 누리던 농업계는 "해로운 것은 살충제보다 카슨"이라고 공격했다. "살충제가 없어서 입는 피해가 수백배 클 것"이란 이들의 항변은 당시 현실적이었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미국의 잉여 농산물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한국도 그랬다.

▶그래도 카슨을 이기지 못했다. '흡수된 살충제가 대부분 신체 장기에 축적된다'는 주장을 '사실(fact)'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죽음의 들판을 '침묵의 봄'으로 묘사한 문학적 감수성까지 사실에 결합하자 세상은 와글거렸다. 카슨은 2년 후 암으로 세상을 떴다. 하지만 그의 책은 7년 후 미국에서 국가환경정책법을 만들었고, 10년 후 DDT를 추방했다. 이때부터 환경은 인류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로 뿌리내렸다.

▶미 역사 저술가 케네스 데이비스가 꼽은 '미국을 들썩이게 한 여섯 권의 책'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제외한 다섯 권이 논픽션이다. '침묵의 봄'과 함께 존 허시의 '히로시마'도 포함됐다. 원폭 투하 8개월 후 석 달 동안 현장을 돌며 생존자 6명이 겪은 체험을 3만1000단어로 정리했다. 원폭 투하의 이유와 책임을 묻는 서술은 담지 않았다. 변화한 삶만 담았다. 불과 90쪽짜리로 출간된 그의 책은 300만부가 팔려나가면서 반핵(反核)운동의 역사를 열었다.

▶벨라루스의 논픽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가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논픽션 작가의 수상은 이례적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10여년에 걸쳐 100명이 넘는 원전 사고 경험자를 인터뷰한 역작이다. 주제 의식에서 허시의 '히로시마'를 잇는다. 그는 인터뷰에서 "리얼리티는 언제나 자석(磁石)처럼 나를 매료시켰다"고 말했다. 논픽션이 종종 픽션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강렬한 집념이 밝혀낸 사실은 어떤 화려한 문장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