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사업에 필요한 4개 핵심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이전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난 5~6월 이미 방위사업청으로부터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술 이전이 안 돼 KF-X 사업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점을 청와대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지난달 말 이 문제가 국감에서 논란을 빚자 민정수석실을 통해 방위사업청에 대한 감찰을 시작했다. 청와대는 몰랐고 방사청에 모든 잘못이 있다는 듯 행동한 것이다. 전형적인 책임 회피가 아닐 수 없다.

애초부터 KF-X 논란은 단순히 방사청만의 잘못으로 넘기기에는 의문이 많았다. 차기 전투기로 선정된 F-35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기가 어렵다는 점을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흔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주재로 작년 5월 이후 몇 차례 열린 '한국형 전투기 사업 대책회의'에선 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핵심 기술 이전이 힘들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록히드마틴도 처음부터 4개 핵심 기술 이전은 미국 정부가 허가한 전례가 없어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주 수석과 장혁 국방비서관이 KF-X 사업 관리·감독자 역할을 하면서 이런 정황을 모르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청와대 외교안보팀이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서도 왜 몇 달 동안 감추고 있었는지, 그 후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낱낱이 국민 앞에 설명하는 게 옳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사업 추진 당시 국방장관이자 방위사업추진위원장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안보 국방 현안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다. 김 실장이 이 문제를 어디까지 알고 있었고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민은 사업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을 언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 그런 보고를 받고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잘 몰랐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외교안보수석실은 6월 이후 관련 대책회의를 수차례 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고서도 대통령에게 이런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문제다. 심각한 장애(障礙) 요인을 파악하고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면 사태를 대충 덮고 넘어가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KF-X는 개발에만 8조원이 들어가는 건군 이래 최대 무기 체제 구축 사업이다. 그런 사업이 차질을 빚는다면 누가 어떤 잘못을 했고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조사해 공개하는 게 다음 번 대형 국방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문건 몇 개 살펴본 뒤 건성으로 감찰을 끝내선 안 된다. 군·방사청 수뇌부뿐 아니라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방사청 실무진에 대한 문책 정도로 얼버무리고 넘어가면 국민의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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