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 있는 290억원대 옛 대한제국 황실 종친의 땅이 법원 경매에 나왔다. 8일 서울동부지법에 따르면, 서울 광진구 중곡동 143-127번지 일대 72만4683㎡ 임야에 대한 경매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 땅은 원래 고종(高宗) 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장남인 이건(1990년 사망)씨 소유였다. 이씨는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육군사관학교·육군대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에서 복무했다. 1947년 모모야마 겐이치(桃山虔一)로 개명했고, 1955년 일본에 귀화했다.

아차산과 용마산에 걸쳐 있는 이 땅은 면적이 광화문광장(1만9000㎡) 38배가 넘고, 감정가는 291억9240만원에 달한다. 2013년 12월 처음 경매에 나왔지만, 지난해 2차례 유찰돼 현재 3번째 경매를 앞두고 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경매에 나온 서울 광진구 중곡동 143-127 일대 임야.

이건씨가 어떻게 중곡동 일대 땅을 소유하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관계자는 “이건씨가 사유지로 갖고 있던 땅을 팔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 외에는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토지 등기부등본에도 1958년 1월 정씨가 매매한 사실부터 적혀 있고, 이전 소유자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이건씨는 귀화 전인 1954년 지인 이모씨에게 중곡동 일대 택지와 임야를 백지위임해 명의를 맡겼다가 1958년 일본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던 정모씨에게 당시 돈 1000만환에 땅을 팔았다.

정씨가 땅을 사들였지만, 앞서 이건씨로부터 명의신탁을 받은 이모씨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서 치열한 법정공방이 벌어졌다. 1962년 시작된 소송은 무려 17년간 이어졌고, 대법원은 1979년 9월 정씨를 땅의 주인으로 최종 확정했다. 1000만환에 산 땅의 시세는 그 사이 350억원으로 치솟아 화제가 됐다. 당시 조선일보도 ‘350억원짜리 땅 10만평 송사 17년… 주인 바뀌었다’는 제목의 사회면 톱기사로 비중 있게 다뤘다.

앞서 이모씨로부터 땅을 사들여 집을 짓고 살던 506가구, 2000여명은 대법원 판결로 큰 피해를 볼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정씨는 선의(善意)로 땅을 산 주민들의 택지 소유권을 포기하고 나머지 임야 부분만 돌려받는 ‘통 큰’ 결단을 내려 화제가 됐다. 정씨가 주민들에게 돌려준 택지의 가치는 당시 시세로 250억원에 달했다.

현재 경매에 나온 임야는 정씨의 후손 4명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 경매전문업체 ‘지지옥션’의 이창동 선임연구원은 “부지 전체가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돼 있고, 유적지도 있어 개발이 안 된다”며 “투자 매력이 없어 유찰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