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성 개그맨들이 여성 비하 발언을 했었다는 이유로 공개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한 칼럼니스트는 페미니즘과 테러단체인 IS(이슬람국가)를 비교했던 칼럼이 문제되어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들에서 하차했다. 한 남성잡지는 누아르식 화보를 찍겠다며 여성을 자동차 트렁크에 납치한 듯한 사진을 표지에 게재했다가 국제적인 문제가 되자 사과하며 잡지를 수거했다. 일련의 '여성혐오' 사건이다. 모든 사회적 현상에는 경제적 맥락이 있게 마련인데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지금 전개되는 양성평등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2년 펴낸 양성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평균 39% 정도 낮은 임금을 받는다. 34개 회원국 중 가장 큰 격차다. 국가별 양성평등 수준을 평가하는 양성평등지수에는 유엔개발계획이 내놓은 성 불평등지수와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성 격차지수가 있다. 전자에 의하면 한국은 146개국 중 11위로 상위권이지만 후자에 의하면 135개국 중 108위로 최하위에 가깝다. 두 지수의 구조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경제성장을 통해서 성 불평등지수에서 중요한 여성 사망률과 미성년 임신 비율은 낮췄지만 성 격차지수에서 중요한 여성의 경제 참여와 정치 권한은 여전히 낮다.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루고도 여전히 여성의 경제 참여가 낮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로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고질적 저성장 요인을 여성 노동력을 이용해 해결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일본이 추진 중인 '아베노믹스' 세 번째 화살의 주된 내용이기도 하다).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현재 52%에 불과한 여성의 노동 참가율을 높여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저임금의 비생산적 일자리가 아닌 고임금의 생산적 일자리에서 여성들이 일하게 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여성의 노동 참가율 상승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험에 따르면, 남편이 아이를 돌보고 아내가 일을 하는 남녀 역할의 전환이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수준의 양성평등이 이뤄지면서 출산율은 반전되었다.

최근 영화 '인턴'은 남녀 성역할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주인공인 줄 오스틴은 잘나가는 인터넷 쇼핑몰의 CEO이고 그녀의 남편이 전업주부다. 70세의 은퇴한 벤 휘태커가 우연히 그녀 밑에서 인턴으로 일하는데 가정을 위해서 자신이 이룬 것(회사)을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도덕적으로 바람직할 뿐 아니라 경제가 더 성장하고 가계가 윤택해지기 위해서 양성평등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적 변화가 되었다.

선진국에서는 여성혐오를 공적 영역에서 드러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드물게 등장하더라도 심각한 논란을 일으키며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다. 2005년 하버드 대학 총장이었던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는 "물리 과학 분야의 종신 재직 자리에 여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일류 과학에 적합한 잠재력을 타고 태어나는 여성의 빈도가 남성보다 낮아서일지 모른다"는 말로 구설에 올랐다. 서머스는 결국 하버드 총장직을 사임했다. 미국이라고 해서 양성평등을 환영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위선이 그 나라의 품격이자 저력인 세상이다. 이런 현실을 불평하기보다는 빨리 적응하는 것이 현명한 남자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