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 이사장은 “우리글은 사용자 수 세계 13위인 무시할 수 없는 문자”라며 “한글을 만든 분들은 물론, 고난 속에서 목숨 바쳐 지켜온 사람들도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탈북 청소년과 이주자, 다문화 가족이 우리글 우리말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게 할아버지의 '나라 사랑, 한글 사랑' 정신을 잇는 길이지요. 5년 전부터 한글 교재를 만들어 서울·안산·순천·울산 같은 전국의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 관련 단체에 보내고 있어요."

지난 7월 외솔회 이사장을 맡은 최은미(56)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5년이 지나면서 점차 잊혀지는 게 아쉽지만 그 뜻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1894~ 1970) 선생의 친손녀다.

'한글이 목숨'이라며 평생 국어 연구와 교육에 매진했던 외솔은 조선어학회 창립과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에 참여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다. 주시경의 조선어강습원에서 공부한 그는 '일제에 나라를 되찾는 방법은 우리말과 글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광복 후 출옥해 문교부 편수국장을 지내며 교과서를 편찬하고 문법 체계를 확립했다. '철수' '영희' '바둑이'란 이름들이 그가 쓴 교과서에서 처음 나왔다. '외솔회'는 그의 뜻을 기려 제자들이 만든 단체로, 해마다 한글 사랑을 실천한 이에게 '외솔상'을 주고 한글날에 '집현전 학술대회'도 연다.

최은미 이사장은 외솔의 손주 가운데 유일하게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세 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한글'과 다시 인연을 맺은 건 '아이들' 덕이었다. 아들 홍성식(26) 딸 홍지안(23) 남매가 5년 전에 다문화 가정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낸 것.

"처음엔 '애들이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생각해보니 기특하더라고요. 외솔회에 교재 감수를 부탁했죠." 그는 "그 무렵 나도 중국서 온 탈북 청소년들이 우리말보다 중국말에 의존하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며 "학교 수업은 따라가지 못하고 학원 갈 돈도 없는 아이들이 쉽게 배울 교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 해 교재 2000부를 찍어 전국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 단체에 전달했다.

다음해엔 대학생 봉사동아리를 인솔해 몽골 울란바토르대학으로 가 한국어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이후 그는 베트남 홍방국제대 등에도 자비로 장학금을 전하고 있다.

4남1녀를 둔 외솔의 맏아들 고(故) 최영해(1914~1981)는 해방 후 출판사 '정음사'를 이끌며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비롯한 각종 국문학 서적을 냈다. 최은미 이사장의 아버지는 외솔의 삼남인 고(故) 최신해(1919~1991)로 서울 청량리뇌병원 원장을 지낸 수필가이다. 최 이사장의 오빠 최홍식(62) 연세의대 이비인후과 교수는 현재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