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학교 우크라이나어과 교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일반적으로 벨라루스나 우크라이나 작가로 소개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녀는 1948년 지금의 우크라이나 땅에서 우크라이나인 어머니와 벨라루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나이에 벨라루스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우크라이나도 벨라루스도 국가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은 과거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나라인 소련의 구성 '공화국'들이었고, 알렉시예비치도 소련 사람으로 태어나 자랐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호모 소비에티쿠스(homo sovietikus)', 즉 '소비에트적 인간'이라고 부르며, 비록 공산주의 제도가 무너졌지만 그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의 마음과 머릿속에서 공산주의가 만들어낸 사고방식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장르는 독특한데, '다큐멘터리 소설'이나 '서민 목소리 소설'로 불리며 수백명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시대의 자화상을 그리는 방식이다. 37년 전에 쓰기 시작한 이 '다큐멘터리 소설'의 연속작은 2013년 다섯 번째의 책으로 완성됐다.

알렉시예비치 작품 중에 한국에서 출판된 것은 시리즈의 첫 번째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박은정 옮김·문학동네)와 네 번째 작품인 '체르노빌의 목소리'(김은혜 옮김·새잎)다.

“내가 듣고 본 삶의 모습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글쓰기 방식을 찾아다녔다”며 논픽션을 써온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1983년에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당시 소련 정부의 검열로 출판금지령을 받게 되었다. 이 책은 이후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실시된 1985년에 와서 검열판으로나마 출판이 가능해졌다. 800여 명의 전쟁 참여 여성들의 스토리로 구성된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한 시도였다. 이 책이 출판되기 이전까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주로 남자들의 시각에서 이야기들이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전쟁에는 수백만명의 여성들도 참여를 했고 그들은 예전과 달리 의사와 간호사로 활동을 한 것뿐만 아니라 총을 들고 남자들과 나란히 싸우며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마지막 증인. 어린이를 위한 솔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7~12세 어린이였던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그 시대를 재구성했다. 작가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전쟁은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전쟁의 잔인함을 겪은 여성이 다시 '정상적인' 여자, 아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전쟁의 참상을 겪은 아이는 '정상적인' 어른, 부모,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흉터는 영원히 남을 것이고 그다음 세대는 이를 이어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 번째 책인 '아연 관(棺)의 소년들'은 제2차 세계대전 세대의 후손들이 경험한 또 다른 전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당시 소련 정부의 비밀정책으로 일반 소련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먼 나라에서 들어오는 아연 관들을 통해 전쟁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알렉시예비치는 거의 처음으로 소설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진실을 폭로하며 이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그들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소련에서 이 책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정부로부터 많은 비판이 있었고, 결국 작가는 1992년에 '정치재판'까지 받아야 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체르노빌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결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났던 1986년도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현재 전 세계에는 440개가 넘는 원자력 발전소가 존재한다. 2011년 후쿠시마의 사건이 보여주었듯이 원자력 발전소는 인류에게 큰 재앙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작가는 한국판 서평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몇 년 후에 소련은 무너졌다. 작가의 또 다른 저서 '죽음에 매료되다'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거나 죽었던 소련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알렉시예비치는 극한상황에서의 인간의 마음을 고찰하며 거기에서 영원한 가치를 확인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